'2012 아시아예술극장 창작레지던시'가 9월 17일부터 22일까지 광주광역시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렸다. 올해로 3회째 진행되는 ‘아시아예술극장 창작 레지던시-광주’는 매년 국제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품을 소개하고 작품 개발 과정을 공유하는 자리다. 올해 국제공모에는 16개 국가에서, 70여 개의 작품이 응모해 경쟁을 벌인 결과 태국의 ‘사라웃(Sarawut Chutiwongpeti)’, 벨기에의 ‘카브라(Cabra vzw)’, 한국의 ‘태싯그룹(Tacit group)’의 3개 작품이 최종 선정되었다. 아시아예술극장의 지정 공모 작품으로는 박찬경 감독의 ‘갈림길’과 팅크탱크의 ‘구리거울의 섬광’이 선정됐다.

이번 레지던시는 8개국 90여 명의 예술가와 기획자가 참여하여 예년보다 더욱 풍성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2010년과 2011년 국제공모 선정 팀이었던 공연 창작집단 ‘뛰다’와 인도네시아의 ‘무기댄스’가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시민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워크숍을 통해 아이디어를 나누고 시민들에게 작품을 공개하는 자리는 꽤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그 중 우리 대학생기자단은 2012년 지정 공모를 통해 선정된 팅크탱크(Tink Tank)의 "구리 거울의 섬광"이라는 작품을 관람하고 이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을 만나봤다. 중앙아시아의 유산인 '구리거울'을 모티브로 역사와 삶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는 이 작품은 매우 신선했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품게 하는 작품이었다. 서현석 연출가는 “몽골에서 구리거울이 사용되기 시작한 게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실크로드를 따라서 몽골을 중심으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일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또 아랍 쪽까지 유리가 아닌 금속으로 만든 거울이 굉장히 널리 사용 됐는데, 특히 몽골에서는 뭔가 그 샤머니즘과 연관이 돼서 꼭 자기모습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 거울을 다른 용도로 써다.”며 중앙아시아의 이야기로 작품을 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공연을 관람하러 온 관객은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공연스텝이 정해준 자리에 앉는다. 무대 중앙에는 대형스크린이 설치 돼 있고 마치 소극장처럼 스크린을 둘러싸고 객석이 마련돼 있다. 후에야 관객의 입장이 바로 공연의 시작이란 것을 알았다.

신화학을 전공했지만 관광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우즈베키스탄 여성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공연은 시작된다. 이어 '스태프'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 관객에게 휴대용 워크맨(카세트 플레이어)을 나눠준다. '이건 뭐지?' 하는 관객들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곧 바로 휴대용 워크맨의 버튼을 작동시키라는 안내가 뒤따른다. 플레이어 버튼을 누르자 무대에 서 있던 우즈베키스탄 배우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이어졌다.





이어폰을 통해 청동 거울에 대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전달된다. 대형 스크린에는 청동거울로 바라본 풍경이 비춰진다. 조금 있으니 스태프들이 객석으로 나와 관객들을 한명씩 무대 중앙으로 데리고 나간다. 무언가에 홀린 듯 따라 나간 관객들은 무대에 자신이 서 있는 것을 깨닫는다. 망연자실 무대의 간이 객석에 앉아 방금 전까지 내가 앉아있었던 객석을 바라본다. 이 순간에도 이어폰에서는 청동 거울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전달되고 있다.





그렇게 무대에 자리 잡은 관객들은 스태프의 진행에 따라 어느 새 무대 뒤편으로, 분장실로, 또 다시 무대 위로 끊임없이 이동한다. 이제 이 공연에서 무대는 물론 객석도, 관객도 없다. 공연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선명하지도 뚜렷하지도 않은 구리거울에 비춰진 '나의 모습'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주제와 공연 전달 방식에 고정관념을 깬 공연은 관객들에게 그다지 친절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연을 보는 내내 관객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얻어야 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대체 뭐지? 내가 왜 지금 무대 뒤에서 가면을 쓰고 있지? 이 무언가의 이끌림은 뭘까? 결국 그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나를 들여다보란 이야기일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그럴 때 마다 관객들은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공연을 보는 내내 관객들을 유목민처럼 옮겨 다녔다. 공연은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그들은 관람객이었고, 극의 소품이었고, 이 무대의 배우였다. 마치, 지난 '탈 쇼케이스'를 연상케 했다. 탈은 관람객이 전시 그 자체였었다. 이것이 바로 아시아문화전당이 추구하는 콘텐츠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창조원도 예술극장도, 평범하긴 거부한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사용되는 대상에서 더 나아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 숨쉬며, 관객들과 함께 손을 잡고 어울리고 즐긴다.

아시아문화전당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