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수업이 끝나고 부랴부랴 앙카라 버스터미널로 달려간 우리는 30TL(한화 약 18000원)를 내고 카파도키아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최소 4~5시간의 이동이 기본인 터키의 버스는 대부분 벤츠다. 넓고 편안한 좌석은 물론 화장실도 있다. 차내 스낵 서비스도 제공된다. 버스 회사에 따라 Free Wi-Fi와 전원 충전 기능까지 제공되기도 한다. 카파도키아까지는 3시간.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해진 밤 10시, 괴레메 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예약해둔 펜션에 체크인을 하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긴 아쉬운 마음에 가볍게 동네 산책을 나선다. 주변에 펼쳐진 기암괴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보니 우린 카펫 가게들이 즐비한 거리에 들어섰다. 이 늦은 시간까지 불이 밝혀진 카펫가게를 바라보며 유명한 터키 카펫을 카메라에 담고 있자니, 주인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며 애플티를 마시고 가기를 권한다. 터키를 여행하다보면 적어도 한번쯤은 현지인들이 베푸는 차 한 잔 마실 기회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카파도키아에 가면 꼭 먹어야할 것이 있다. 바로 항아리케밥(Pottery Kebab)이다. 호텔 매니저가 항아리케밥으로 유명한 음식점 '디벡(Dibek)'을 추천했다. 디벡은 다른 음식점들과 달리 항아리 케밥을 요리하는데 3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해야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요리에만 무려 3시간이라니, 과연 어떤 음식일까? 예약 후 우리는 괴뢰메 야외박물관으로 향했다. 괴뢰메 야외 박물관(Goreme Open Air Museum)의 입장료는 15TL(한화 약 9800원)이지만 터키 내 학생증이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초록색 뮤지엄 카드(10TL)를 소지한 우리는 무료 입장을 한다. 단돈 10TL를 내고 만든 뮤지엄 카드는 1년 동안 터키 정부가 운영하는 모든 박물관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5TL를 추가로 지불하면 한국어가 지원되는 오디오 가이드도 대여할 수 있다. 괴뢰메 야외 박물관은 터키의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전체를 다 둘러보기 위해서는 2-3시간은 할애해야 하는 이곳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다면 단체관광객들을 피해 오전시간이나 입장마감시간인 5시 무렵 방문할 것. 티켓은 하루 종일 유효하기 때문에 재입장이 가능하다. '괴뢰메'라는 이름은 터키어로 '너희가 볼 수 없는 곳, 감추어진 곳'이라는 뜻인 만큼 아주 오래 전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들어와서 살았던 곳이다. 이곳은 밖에서 보면 그저 평범한 바위산들이 모여 있는 것 같지만 내부에는 9-11세기에 그려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지역을 점령한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군인들에 의해 대부분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초기 기독교 수도원과 교회 주거지는 물론 부엌과 식당, 식량 저장창고까지 다양한 공간을 볼 수 있다.


드디어 항아리케밥을 먹을 수 있는 예약시간이 되었다. 터키 어느 식당에 가나 식전에 제공되는 푸짐한 빵과 샐러드, 절인 고추와 양배추와 카파도키아 와인을 마시며 기다리니 항아리케밥이 나왔다. 한 손은 항아리 윗부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망치를 쥐고 가운데 그어진 선을 따라 손목에 힘을 빼고 톡톡 두드려 깬다. 보기에는 쉬워보여도 힘 조절을 못하면 자칫 와장창 깨질 우려가 있어 조심해야 한다. 우린 치킨 케밥과 비프 케밥을 각각 시켜 두 가지 맛을 함께 맛볼 수 있었다. 토마토와 가지, 마늘, 양파와 고기를 함께 넣어 3시간 이상 화덕에 은근하게 끓여야 부드러운 고기의 식감을 느낄 수가 있다고 한다.











카파도키아에는 관광객들이 카파도키아 구석구석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열기구 투어와 그린 투어를 들 수 있다. 열기구 투어의 가격은 약 100유로에서 150유로까지로 다른 투어 프로그램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환상적인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면 꼭 참여하길 권한다. 우리 일행은 그린투어에 참여했다. 그린 투어는 교통편, 점심, 입장료 모두 포함하여 60TL(한화 약 39000원)에서 90TL까지 가격은 흥정하기 나름이다. 때로는 자신이 묵은 숙소와 여행사의 관계에 따라 할인이 제공되기도 한다. 그린투어는 말 그대로 초록색, 카파도키아 내에 있는 숲과 지하도시 등 개별 관광객들이 스스로 돌아보기 힘든 곳들을 포함하고 있는 투어이다. 오전 9시 무렵 본인이 묵고 있는 숙소로 가이드와 투어 차량이 픽업을 하러 온다. 보통 8명에서 12명까지 함께 투어하는 이 그린 투어의 코스는 괴레메 파노라마부터 시작해 데린쿠유 지하도시, 으흐랄라 계곡 트래킹, 영화 <스타워즈> 촬영장을 지나 피존밸리까지 약 8시간에 걸쳐 이어진다.









첫 투어가 시작되는 곳은 괴레메 기암괴석들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괴레메 파노라마. 그림 같은 기암괴석들이 아찔하게 펼쳐져 있어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곳이 카파도키아 하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장면들이 펼쳐지는 곳이다. 스머프의 작가가 이곳을 보고 나서 스머프 버섯 집의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마치 저렇게 치솟은 돌 안에서 파파 스머프가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괴레메 파노라마에서는 자연의 신비함에 놀랐다면 데린쿠유 지하도시에서는 사람들의 위대함에 대해 놀라게 된다. 6-7세기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군대가 이곳을 침략하자 기독교인들은 봉화에 불을 붙여 적들의 침략을 알리는 신호를 보냈다. 이 신호가 카파도키아에 도착하면 비잔틴 기독교인들은 비밀 통로를 통해 거대한 지하 도시로 숨어들어 갔다. ‘깊은 우물’이라는 뜻을 지닌 데린쿠유(Derinkuyu) 지하도시에는 약 1만 명의 사람들이 한번 지하도시에 내려오면 몇 달씩은 살았다. 그들은 지하도시와 지상을 연결해주는 통풍구를 우물로 위장했다. 페르시아의 기마병들이 발밑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부드러운 응회암이 대부분의 연기를 흡수하고 남아 있는 연기들은 통풍구를 통해 여러 곳으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햇빛 한줄기마저 통하지 않은 곳에 1만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니 참으로 믿을 수 없이 대단하다. 게다가 동물을 묶는 손잡이가 있는 마구간, 맷돌까지 남아있는 곡물 창고, 주방, 제단과 세례장이 있는 교회까지 마을 전체를 옮겨놓았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체계적이다. 놀라움의 연속인 지하도시이지만 폐소공포증을 일으킬 수도 있을 만큼 비좁고 갑갑한 코스도 있다. 비좁은 통로를 지나 한참이고 내려가기 때문에 약간은 쌀쌀하니 겉옷을 챙기는 것도 잊지 말 것! 데린쿠유 지하도시말고도 카이마클르 지하도시, 외즐뤼제 지하도시도 있다.









다음 코스는 으흘라라(Ihlara Valley) 계곡에서의 하이킹이다. 악사라이 남동쪽의 으흘라라 계곡은 그루터기 벌판을 가로지는 모양을 하고 있는데 한 때 비잔틴 수도사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절벽 꼭대기를 기지 삼아 교회를 깎아 만들었고 교회 사이사이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멜렌디즈(Melendiz) 강을 따라가면 새가 지저귀는 숲이 펼쳐진다. 으흘랄라 계곡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경하는 것은 단순히 사진을 찍고 차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1시간정도 흙길을 직접 밟고 멜렌디즈 강의 물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으흘랄라 마을 구석구석 자리하고 있는 교회들의 프레스코 벽화들을 감상하는 것. 코카르 킬리세(Kokar Kilise)에는 예수 탄생 및 십자가 처형의 멋진 프레스코화가, 바핫튼인 사만르으 킬리세에는 으흘랄라 마을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프레스코화들이 있다. 십자가 처형, 헤롯 왕의 유아 대학살, 세례식 등 예수의 삶을 표현한 장면들이 많다. 아쉽게도 프레스코 벽화들은 보호 차원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으흘라라 계곡 티켓으로 함께 입장 가능 한 곳은 으흘라라 계곡 끝에 위치한 셀리메 수도원(Selime Monastery)이다. 셀리메 수도원은 놀라운 동굴교회로 거대한 주방과 치솟은 굴뚝이 있는 바위를 깎아 만들었다. 실크로드를 건너던 상인들이 쉬어가는 장소이기도 하고 마을로 쓰여졌다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스타워즈1 : 보이지 않는 위험>을 촬영한 곳으로도 더 알려져 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이 지역의 기괴한 모습에 매료되어 이곳을 모티브로 외계 행성 세트를 만들었다. 사실 실제로 이곳에서 촬영을 진행하려 했으나 터키 정부와 법적인 마찰을 겪으며 무산되어 실제 촬영은 모로코에서 진행되었다.


투어의 마지막은 비둘기 계곡(Pigeon Valley)이다. 우치사르(Uchisar) 성 옆에 있는 우치사르 계곡을 일컫는 말이다. 바위들의 생김새를 보면 왜 이곳이 비둘기 계곡이라 불리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바위에 구멍이 뚫려있는 모습이 마치 비둘기 집 같기 때문이다. 오래 전 화산지형으로 척박한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비료가 필수인데 카파도키아 사람들은 비둘기의 배설물을 비료로 이용했다고 한다. 일몰과 트래킹 코스를 묶은 레드 투어는 개별적으로 둘러볼 수 있지만 그린 투어는 개별 관광객들이 하루 만에 돌아보기에는 교통상, 시간상 힘든 코스들을 묶어 놓은 만큼 시간이 많지 않은 관광객들에게는 꼭 추천하는 코스다. 우리에게 2박 3일의 카파도키아는 관광도 관광이지만 친절하고 정이 넘치는 카파도키아 사람들과 나눈 시간들과 따뜻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