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며 항상 그녀를 애먹게 만들었던 그 사람, 그녀의 남편이었다. 16년 전에 찍은 웨딩사진을 보여주며 이자스민 씨는 그녀의 한국 정착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옆집 아주머니처럼 서글서글한 인상과 정겨운 입담에 우리는 금세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95년, 슈퍼맨이었던 남편과 처음 한국에 왔을 땐 다문화라는 말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냥 국제결혼이라는 말만 있었을 뿐. 당시엔 국제결혼 그 자체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외국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뭔가 본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자스민 씨는 한국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무료 교육이나 센터에서 받는 지원은 눈 씻고 찾아보기도 어려웠지만 국제결혼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들이 지금보다 훨씬 편안하고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당시에는 굉장히 새로운 일이었고, 또 그래서 굉장히 좋게 받아들였다면, 지금은 국제결혼을 하고 한국에서 살기 위해 오는 친구들이 많아지다 보니 당시에 느꼈던 눈빛과 지금의 눈빛이 사뭇 다르게 차이가 난다고 했다. 요즘엔 국제결혼도 보편화 됐으니까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일 거 같다 라는 생각이 드는데, 막상 또 그게 아니더란다. '대체 이 사람들은 여기에 와서 뭐 하나?'하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늘어가는 다문화 가정을 보는 한국 사람들의 걱정스런 눈빛이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렇게 이자스민 씨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나오는 단어가 다문화라는 단어였다. 처음엔 다문화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 이제야 사회가 우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구나. 사회가 우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문화는 꼬리표처럼 어제도, 오늘도 그들을 따라다니는 이름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한국 사회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다문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문화 안에서 이주여성들과 그 자녀들이 늘 자기가 들어가야 할 그룹을 이유 없이 찾아다녀야 함에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도대체 다문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그녀가 물었다. 동남아에서 온 여성? 농촌 총각과 결혼한 여성?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이 결혼을 하면 다문화가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그녀가 어느 한 강연회에서 그녀가 들었던 이야기다.



그 말에 그녀는 깊이 공감했다. '맞아! 이 말을 꼭 다른 자리에서 말 해줘야지'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다른 자리에 가서 이런 말을 했더니 거기서 돌아오는 답변이 칼날 같았다. "너는 지역감정을 일으키고 싶니?" 궁금했다. 그 분은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도대체 다문화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기에, 다문화를 어디다 갔다 붙이냐는 이런 이야기들을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였다. 또 다시 그녀가 우리에게 물었다. 다문화 하면 무슨 생각이 드세요? 그리고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각자가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편견이 아니냐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녀는 강의를 할 때마다 하나의 문제를 낸다고 한다.
일명 <다른 하나 찾기> "이중에서 다른 것 하나는 뭘까요?"



그녀가 처음 이 문제를 냈을 땐 "모든 것은 저마다의 개성과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 다릅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단다. 하지만 이 문제를 낼 때마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항상 똑같은 반응들을 보였다. 사람마다 자기의 기준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문제의 답도 달라지는 것이다. 다문화도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기준을 어디에 두고 보느냐에 따라 다문화가 한국사회에서 좋은 다문화가 될 것인지, 나쁜 다문화가 될 것인지 갈리게 된다. 우리는 이제 다문화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바라봐야 할까?










그녀가 한국에 와서 가장 낯설게 느꼈던 곳은 시어머니 손에 이끌려 처음 가봤던 목욕탕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고, 몸을 씻는 문화가 처음엔 큰 충격이었다고 했다. 부끄러워서 탕 밖에 나올 수도 없었던 그녀는 그곳에 한동안 가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나니 절로 목욕탕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들더란다.

목욕탕을 찾은 어느 날,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씻고 있는 그녀를 어떤 아줌마가 톡톡 두드렸다.
"때 좀 밀어줘요. 나도 밀어줄게요." 자신보다 두 배나 넓었던 그 아주머니의 등을 밀어주고 밖으로 나온 그녀는 힘들었지만 한편으론 마음 한편으로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과 소통할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목욕탕을 한국에 비유했다. 목욕탕은 한국이고, 아줌마는 한국 정부이자 국민이다. 낯선 곳에 온 이들이 한국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 때면 그녀는 목욕탕에서 만난 아줌마들을 떠올리라고 이야기 한다. 그녀가 2~3배나 넓은 아줌마들의 등을 밀어주며 그렇게 16년을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산 이야기들을 전하며. 그렇게 다문화 가정들이 한국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2~3배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 그녀는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을 굴에 비유했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들과 더불어 잘 살아가는 모습을 진주로 표현했다.



한국은 지금 다문화 사회가 진행 중이다. 그동안 익숙했던 환경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에 잠시 지금은 많은 걱정들을 하고 있지만, 곧 그 걱정들을 뒤로한 채 머지않아 이런 진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임을 그녀도 확신하고 있었다. '진정한 배려와 존중이 존재하는 다문화가 대한민국의 힘이다!' 는 그녀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그날까지 진주를 품은 굴처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