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문화 아시아

편집부·대학생기자단 4기 박민우 이정은

처음 그 곳은 길이 아니었을 게다. 그저 건조하고 마른 흙바닥이었을 게다. 그 곳에 처음 발자국이 찍히고 수천 번 수만 번의 걸음이 지나가고서야, 마른 땅이 다져져 길이 되었을 게다. 곱디고운 비단으로 넘실넘실 만들어진 길, 실크로드. 그렇게 아시아의 비단은 서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기, 광활한 땅 아시아, 하나의 뿌리를 가진 넓은 땅에 또 하나의 길이 다져지고 있다. 그 하나의 길, 하나의 뿌리는 곧은 줄기를 따라 여러 갈래로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가 새 잎을 틔우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달콤한 열매를 맺을게다.

『아시아에서 길을 찾다』 강연회가 뜨거운 인기를 얻으며 전 좌석 매진의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3월 17일 1회를 시작으로 5월 26일까지 이주에 한번씩 목요일마다 열리고 있는 강연은 아시아 문화의 이해를 돕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가 나아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개설되었다. 아시아 문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1,2회 강연이 전 좌석이 매진되어 빈 공간에서 서서 드는 청강자들이 있을 정도다. 건축, 영상, 역사, 다문화, 무용,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7인의 개성이 묻어나는 강연을 통해 매력적인 아시아를 선보인다. 이번 호 웹진에서는 그 중 1, 2회 강연 현장을 찾아가보았다.

첫 강좌는 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이자 건축가인 승효상 씨가 '빈자의 미학, 아시아의 터'라는 주제로 문을 열었다. 그는 이 땅에서 우리 선조들이 사유하고 지어왔던 건축물들과 서양 도시의 건축물들을 비교하며 우리의 전통 건축과 양식이 갖는 가치와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더불어 세계를 이끌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제 윤리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아시아의 건축으로 기울고 있음을 언급했다. 대표적인 예로 서양의 르네상스 시대와 같은 시기에 이언적이 설계해 지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우리 가옥인 '독락당'(경주·보물 제413호)을 이야기 했는데, '독락당'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건축물을 세우는데 급급한 것이 아닌 사유의 과정을 통해서 지어졌음을 강조하며, 이러한 우리의 건축이 인간과 자연모두가 조화로운 풍경을 그리고 있는 것이 특징임을 밝혔다.

인간도 그렇듯, 집안의 공간 또한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은 없기에 모두 동등한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서 어떠한 공간이든 들어가서 동락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의 전통 집임을 밝혔다. 반면 서양 건축물에서는 조화보다는 지배와 복종을 강조하는 구조로서 건축물이 존재하고 있으며 결국 나 혼자만이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자기중심적 사상이 르네상스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동양 건축과 서양의 건축의 사상적 차이를 역설했다.

2000년 베니스 국제건축비엔날레에서는 '덜 미학적인 것이 더 윤리적이다'라는 주제로 이미 서양 건축사에서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윤리라는 개념을 다시 부각 시켰다. 미학이 늘 중심 이었던 서양 건축에서 새로운 시대의 좌표를 '윤리'라는 개념에서 찾고 있음은 이제 미학보다는 윤리를, 지배보다는 조화를 강조한 아시아의 건축이 세계 건축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는 움직임 중 하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또한 마스터플랜으로 표현되는 서양식 현대도시는 우리가 추구하는 문화중심도시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밝혔다. 서울과 같이 개발을 명목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신도시는 대부분 조화보다는 지배와 복종을 강조하는 서양 건축물과 같은 오류에 빠져있는데 진실한 가치를 위해서 어떠한 도시를 지향해야하는지 잘 선택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사고전환'이 무엇보보다도 필요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대의 도시는 이미지보다 서사가 중요하다. 건축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며, 건물 자체의 존재 가치보다는 거주민들 사이의 윤리가 더 중요한 것이다. 최근 서양 건축인들의 움직임은 바로 우리 조상들이 해왔던 이야기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더 이상은 헛된 욕망만을 보여주는 랜드마크만 쫓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더 이상 두바이나 서양의 건축물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미 자연적 랜드마크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 속에서 해야 할 일은 자연과 정직하고 윤리적 관계를 추구하는 일, 그 뿐이다. 과거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 날 강연은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생각하게 한 뜻 깊은 자리가 됐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여과 없이 서구식 생활방식과 사고를 행해왔던가? 미국의 인류학자 랄프 린튼(Ralph Linton)은 "100퍼센트 미국인"이라는 다소 희화적인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글에서 그는 평범한 미국인의 일상생활을 살핌으로써 그의 일상생활이 얼마나 철저하게 비미국적인 문화요소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는 이 평범한 미국인은 파자마를 자연스럽게 입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파자마는 미국적인 것이 아니고 동인도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가 누워 있는 침대 역시 페르시아와 소아시아에서 시작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침대에 누워 그를 감싸고 있을 물질의 재료들을 살펴보면, 목화는 인도에서 그리고 아마는 근동지방에서 처음 재배되었다. (중략) 욕실의 거울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처음 욕실에서 사용했고 유약을 칠한 타일 역시 근동에 기원을 두고 있다. 또한 변기를 만드는 도자기술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대부분의 것을 서구가 아닌 동양, 근동 지방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무리가 없다. 종속이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안드레 군더 프랑크(Andre Gunder Frank)는 아시아가 1400~1800년대 시대와 그 이전에도 세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리오리엔트’ (ReORIENT: GLOBAL ECONOMY IN HE ASIAN AGE)에서 식민지 시대의 인도를 제외하고 남미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서부, 중앙, 동남부 및 동아시아 대부분은 적어도 19세기 중반까지 계속 번영했었고, 중국 역시 1957년의 대만 독립(Taipeh Rebellion) 이후와 1860년 1차가 아닌, 2차 아편전쟁(Second Opium War) 이후까지도 실질적으로 아시아는 몰락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는 세계에서의 서구의 지배라는 현상이 보다 최근에 발생한 것으로 영·미 중심적 사학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1,000년 혹은 500년이 아니라 더 짧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아시아의 부상 혹은 아시아가 세계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원복 교수의 강좌 내용은 안드레 군더 프랑크 교수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이날 강좌에서 이원복 교수는 영국의 철학자 버틀랜드 러셀(Bertrand Russel)의 말을 인용하여 동·서양의 의식구조 차이를 언급하였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서양은 ‘플라톤’, ‘유대경전’, ‘갈릴레오 갈릴레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통해 각각 인간중심, 절대적 유일신, 그리고 과학의 힘, 즉 “신을 제외한 나는 절대적 힘이다”라고 함축하여 서구의 근본적인 의식구조를 공존과 타협이 없는 굴복을 위한 사고로 보았다. 이에 반해 동양은 ‘노자’, ‘공자’, ‘석가’를 대표로 하여 자연과 사회에 대한 성찰과 조화, 그리고 내세에 대한 포용의 정신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동·서양은 의식 구조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서구의 ‘절대적 힘’에 의해 지배와 굴복을 당해야만 했다.

이원복 교수는 서구의 사고방식은 언젠가 그 한계에 도달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시아의 가치를 통해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도달하게 된다. 이날 강좌에서 이 교수는 아시아의 부상이, 곧 중국의 부상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중국은 중화(中華)사상에 입각하여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조공관계로 볼 것이며, 과거 200년 전의 위상으로 되돌아 갈 것으로 예측하였다. 우리의 미래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의식구조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광주는 어떠한가? 광주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공동체 정신’이 대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있다. 5.18민주화항쟁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시민의 손으로 민주주의를 구현해 낸 프랑스 파리혁명의 그것과 견주어 볼만하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장이자 전남대 인류학과의 최협 교수는 광주는 5.18민주화항쟁이후 더 이상 하나의 평범한 지방도시가 아닌, 무언가 여타의 도시와는 다른 강렬한 이미지와 정체성을 갖는 도시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하였다. 5.18민주화항쟁의 귀중한 경험과 정신을 배우고 경험하고 실천하고자하는 아시아인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광주가 아시아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보편적 가치를 ‘나누는’ 중심이 되고, 그러한 가치를 공유하여 아시아의 ‘연대를 이루어 나가는’ 중심이 되기를 바란다. [일부 내용, 최협 "도시로서의 광주" (2005)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