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그녀는 방학을 맞아 부모님이 계신 광주로 내려왔다. 그녀는 광주에 오면 언제나 빠지지 않고 다니는 헬스장으로 가서 운동을 했다. 러닝머신에서 30분간을 뛴 덕에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고 심한 갈증을 느꼈다. 마침 헬스장 구석에 보이는 자판기로 가서 음료수를 뽑아 들었다. 이제 4학년. 카자흐스탄 등을 여행하며 중앙아시아에 매료되어 전공을 중앙아시아어과로 선택을 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낯선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 일 자리 찾기가 그리 녹록하진 않았다. 그녀는 요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다. 아아, 심각한 생각은 여기까지, 오늘은 모처럼 광주의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 시계를 본 그녀는 시원하게 목을 축인 음료 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때 그녀의 눈에 광주 지역 신문이 들어왔다.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는 기사가 있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대학생기자단 모집 기사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 이거야!”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로 학교를 오기까지 광주에서 자란 그녀에게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되고 그 심장부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건립된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이소의, 그녀의 꿈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취업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문화 경험을 쌓고 교류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었다. 우선 대학생기자단에 지원하여 합격한 그녀는 대학생기자단으로 활동하며 아시아 문화와 관련된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러던 중 아시아문화정보원의 아시아문화아카데미 개설을 위한 시범사업으로 ACA(아시아 크리에이티브 아카데미)가 개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하여 아시아의 정부기관, 민관산학의 공동참여를 통해 네이버 등의 강사진 100인과 함께 출판, 웹, 영상, 모바일 등의 미디어 현장실무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미 몇 기의 졸업생들을 배출해낸 ACA는 사회적으로도 현실적이고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인정받고 있었다.


ACA 오리엔테이션 날, 이소의는 이번 달 취재의 주제를 그것으로 잡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약 50여명의 한, 중, 일 등 아시아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그녀는 어렵지 않게 두 명의 학생과 인터뷰를 할 수가 있었다.


도한결(25세) “인터넷에서 우연히 ACA를 접했어요. 지난 5월, ‘한우물 파기 싫은 청년에게 고함’이라는 부제로 ACA 학교 설명회를 개최한다는 인상적인 내용의 글을 처음 봤는데, 어느 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네요. 이 기회를 통해 나 자신을 깨우치고 발전하게 되리라고 생각해요.”


신지영(28세) “디자인을 전공해서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부터 틀에 박힌 디자인이 너무 싫어서 여러 정보를 알아보던 중 우연히 ACA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면접할 때 훌륭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마치 대입 합격을 고대하는 심정이었답니다. 특히 태극기를 디자인했던 수험생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기 위해 베를린까지 자비로 다녀왔다고 들었을 때 나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죠. 그렇지만 전 저 나름대로 묵묵히 온 힘을 다 했습니다. 하늘이 도왔는지 운 좋게도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했어요. 앞으로 지금처럼 마음먹은 대로 저만의 개성을 갈고 다듬을 생각이에요.”











그녀는 한 작은 디자인 회사를 다녔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입학했지만 단조롭게 매일 똑같은 생활과 똑같은 형식이 반복되는 곳에서 허전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ACA를 접했다. 지원을 했고 운 좋게 장학생이 되었다. 강사진들은 화려했다. 현장에서 실무를 직접 하고 있고 그 분야에선 이름만으로도 그 가치를 누구나 다 인정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신지영씨는 평소 관심이 있었던 출판 분야에 매진했다. ACA의 출판 특화 커리큘럼을 통해 전통적 출판 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학습을 기초로, 북아트, 북아트디렉션 등의 디자인 교육을 받았다. 그걸 바탕으로 인디펜던스 출판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을 배양하며 올드 미디어의 디지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녀에겐 이제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ACA 교육 과정을 이수하면서 1인 기획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배우고 직접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ACA를 졸업하고 몇 년 동안 더 경험을 쌓으면 창업을 할 생각이다. 창업을 하기 전에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2014년에 완공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그 곳, ACA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해서 신분고하 남녀노소 구분 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세계적인 복합문화시설인 전당에서 문화 콘텐츠를 창작하고 싶었다. 특히 아시아의 문화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다. ACA 졸업 후 신지영씨는 아시아문화전당의 5개원 중 하나인 문화창조원에 취업을 했다. 2015년, 신지영, 지금 그녀는 문화창조원의 문화콘텐츠제작센터에서 일한다. 아시아 예술가 및 기획자의 아이디어가 새로운 창작물, 혹은 출판물로 구체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창작 아틀리에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문화콘텐츠로 구현하여 디지털 북을 만드는데 몰두하고 있다. 그녀는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며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만든 디지털 북이 아시아와 세계에 아시아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는 게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23세 때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그녀는 한국의 매력에 빠져 쭉 눌러 앉아 버렸다. 학교를 다니며 만난 캠퍼스 커플인 한국인 남자친구와 결혼을 해서 수지라는 8세의 예쁜 딸도 두고 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이제 그녀의 나이 33세. 따뜻한 가족과 함께 있고 다문화 다양성에 대해 이해의 폭이 넓어진 지금의 시대이지만, 고국인 키르기스스탄이 가끔 그립다. 그녀는 어제 거리를 걷다 들어간 작은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을 펼쳤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키르기스스탄의 설화들과 한국, 중앙아시아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있는 한국과 중앙아시아 신화·설화·영웅서사시집 1권이었다. 총 100권으로 나와 있는 이 책은 그 양이 매우 방대하였다. 그 중 자밀라가 가지고 있는 1권은 키르기스스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책에 빠진 자밀라는 수지의 배고프다는 칭얼거림에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았다. 8시를 훌쩍 넘긴 시간.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었다. 자밀라는 익숙한 솜씨로 남편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끓였다. 보글보글 끓여진 매콤새콤한 김치찌개를 한 숟갈 맛보며 그녀는 땀을 뻘뻘 흘리며 먹을 남편을 생각했다. 그녀의 얼굴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생긴 쓸쓸함이 사라지고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여보 나 왔어, 어디 우리 수지도 잘 놀고 있었어?” 남편의 낮지만 들뜬 음성이 들렸다. 자밀라는 얼른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달려 나왔다. 남편은 그녀를 보자 품에 안고 있던 수지를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자밀라에게 주었다.
“이게 뭐예요? 오늘 월급날도 아닌데? 당신 보너스 탔어요?”
자밀라의 질문에도 남편은 대답 없이 미소만 짓고 있었다. 봉투 안에는 광주로 가는 KTX표가 있었다.
“키르기스스탄에는 휴가 때 같이 가. 대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에 갔다 오라구. 내일 수지랑 같이 아시아문화전당에 가서 당신이 보고 싶은 키르기스스탄을 맘껏 보고 와!”
자밀라는 남편을 얼싸 끌어안았다.






다음날, 자밀라는 수지와 함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에 있는 아시아문화전당을 방문했다. 아시아문화전당에는 그동안 수지가 접하지 못 했던 중앙아시아의 옛이야기들이 있었다. 수지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을 떠나본 적이 없어 어머니의 나라에 대해 잘 몰랐다. 자밀라는 안내책자를 펼치고 수지의 손을 잡고 이동했다. 아시아문화정보원에 있는 키르키스스탄의 자료들을 보며 자밀라는 수지에게 키르키스스탄의 문화를 알려주었다. 자밀라와 수지는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하는 공간인 문화창조원의 복합전시관으로 향했다. 전시관을 나와 문화창조원을 둘러보는 데 중앙아시아와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정보원에 구비되어 있는 자료를 가지고 공동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워크숍이 진행 중이었다. 자밀라는 궁금했지만 아이에게는 어려울 것 같아서 어린이문화원으로 향했다. 어린이문화원에서는 키르기스스탄 영웅신화인 마나스를 소재로 한 인형극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시아예술극장에서는 한국과 중앙아시아의 설화를 바탕으로 창작한 뮤지컬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었지만 자밀라는 딸 수지를 위해서 인형극을 선택했다. 막이 내리고 아시아의 예술가들이 무대에서 인사를 했다. 수지는 박수를 치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극장을 나오는데 수지가 자밀라의 손을 놓고 뛰어갔다. 아이가 간 곳은 전당 내에 있는 서점이었다. 그 앞에 중앙아시아 설화 동화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수지는 동화책을 집어 들고 외쳤다.
“엄마, 나 이거 사줘!”
자밀라는 태어나서 한번도 한국을 떠나지 못한 딸 수지에게 자신의 모국 키르기스스탄을 알려줄 수 있어서 기뻤다.











2015년. 이소의는 숙소로 돌아와 TV를 켰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대학생기자단 활동이 끝날 무렵, 그녀도 학교를 졸업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정보원에 취업을 했다. 그녀는 지금 아시아 전문가들과 함께 아시아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 아시아 이곳저곳을 여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친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워 리모컨을 이리 저리 돌렸다. TV에서는 다큐멘터리가 방영 되고 있었다. 아시아에 한류 열풍을 일으킨 한국 배우의 음성이 내레이션으로 나왔다.

















다큐의 내용은 이소의, 그녀도 아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대학생기자단으로 활동하던 중 취재했던 ‘한-아세안 전통 오케스트라’의 창단 공연을 떠올렸다. 한국과 아시아 11개국 79대의 전통악기가 하나로 어우러져 감동을 만들어낸 최초의 그 순간을 말이다. 그 당시만 해도 아시아문화전당은 그저 손바닥에 쥔 바닷물 마냥 형체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아시아 문화를 보기 위해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아시아문화전당을 끊임없이 방문하고 있다. 이제 내일이면 그녀도 그 곳으로 돌아간다. 저 가방 한 가득 아시아 문화에 관한 자료들을 싣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