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나라, 천의 얼굴로 표현되는 인도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처음 도착한 곳은 수도 델리. 도심지답게 현대화된 델리의 도시풍경이 인도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당황스러웠다. 사실 인도 하면 떠오르는 대부분의 이미지는 강렬한 눈빛을 가진 체구가 작은 인도 사람, 무질서함과 지저분함이 느껴지는 길 위의 모습들이었다. 그래서 현대적인 인도의 풍경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인도의 수도 델리는 훨씬 현대적인 곳이었다. 세련된 고층빌딩과 쾌적한 지하철이 있고, 넓은 스크린이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도 있다. 물론 델리 전역이 도시화된 풍경이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생각지도 못했던 현대적인 인도 풍경에 놀랐다는 것이다. 특히, 인도의 대표 이미지인 전통의상 ‘사리’를 입은 여성들을 이런 대도심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리’가 인도 전통 의상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한 장의 긴 천에 불과하다. 허리에 몇 번 감은 뒤 상체를 감아 올려 어깨 쪽으로 넘겨 입는 식이다.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여신의 이미지를 내는 사리는 전통의상이라는 표현보다는 일상의복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대부분의 여성들이 평상시에 입고 다니는 옷이다. 이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칭칭 감은 이 옷은 땅바닥에 질질 끌리기도 하고 어깨선 부분은 잘 흘러내리기도 해서 불편할 텐데 이렇게까지 ‘사리’를 고수하는 이유가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참 ‘인도’스러웠다. 인도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카스트제도에 따라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이 나뉘는데 이는 사람의 계급, 직업뿐만 아니라 의복에까지 적용된다는 것이다. 의복에 있어 깨끗하지 않은 것은 바느질 한 옷. 옷에 흠집을 내는 것은 영혼을 손상시키는 것이라 여겨 천한 옷으로 구분되었기에 지금도 인도 여성 대부분이 활동하기에는 다소 불편함이 많은 이 옷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리에 관심을 보이자 한 친구는 자신의 사리를 입혀주고 싶다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의 사리를 꺼내 주었다. 내가 직접 옷 태를 만들어가며 입어야 하는 사리입기가 손재주 없는 내겐 정말 어려웠다. 결국, 친구의 도움으로 가장 복잡한 방법이지만 가장 정교한 모양을 만들어낸 사리를 입고, 여성들이 이마 한 가운데 붙이는 ‘반디’라는 점을 붙이고, 그에 따른 전통화장을 해보았다. 옷 끝을 발로 밟기도 하고 어깨 부분이 줄줄 흘러내리기도 했지만, 이 천 한 장이 지니는 카스트의 의미를 두고 볼 때, 약간의 불편함은 충분이 감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사회 특유의 신분제도인 카스트. 예전에는 가장 낮은 계급 신분의 사람들이 싸이클릭샤(인력거)를 끌었다지만, 지금은 가장 높은 계급의 브라만일지라도 경제적 이유로 인해 싸이클릭샤를 끌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브라만이다’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나라가 또 인도이다. ‘신의 도시’ 이기도 하지만 ‘음악의 도시’로도 불리는 바라나시에서 만난 음악가나 대학 교수들, 심지어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마저 하나같이 자신들이 브라만 계급임을 강조했다. ‘음악이 곧 신’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가들은 오래 전부터 사제 역할을 하는 브라만 계급 출신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브라만 계급만이 음악을 가까이 하는 것은 아니다. 바라나시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엉성하게나마 장구를 칠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의 전통악기인 타블라(한 쌍으로 이뤄진 작은북)를 칠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뮤지션은 브라만계급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여유가 되는 사람이니까 악기를 조금이나마 다룰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릭샤왈라(싸이클릭샤를 끄는 사람)와 도비왈라(빨래를 하는 사람), 그리고 비스킷을 하나만 사달라던 어린 꼬마까지 타블라의 기본 손동작을 해 보이는 것을 보고 그게 아니구나 싶었다. 한번은 가트에 앉아 아프리카 타악기인 잠베를 치던 적이 있었다. 멀찍이서 빨래를 하던 도비왈라 할아버지는 빨래하던 것을 멈추고 내 뒤에 앉으시더니 한참을 쳐다만 보고 계셨다. 나중에는 뒤에서 허공에 대고 양손을 움직이며 할아버지만의 연주를 하시고 계셨다. 내가 악기를 내밀자 손사래를 치시더니 나중에는 땅바닥에 두 손을 올려놓고 타블라 연주할 때 손가락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셨다. 영어를 할 줄 모르시던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타블라를 직접 쳐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많이 보고 들어보아서 잘 따라한다. 테이블 위에서는 나도 잘 친다’ 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타블라를 가지고 길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하면,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현지인들이 몰려와 서로 자신의 연주를 보여주기 바쁘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어른들까지. 잘 하든 못 하든 할 줄 아는 만큼 악기를 두드리며 관객들은 박수를 치고, 또 누군가는 허공에 대고 악기를 연주하는 시늉을 낸다. 음악 소리에 맞춰 순식간에 작은 축제의 장이 펼쳐지는 광경을 볼 때마다 인도인에게 매료되기 바쁘다.






인도에는 세계문화유산 타지마할이 있고, 한 여름 무더위 날씨 속에 히말라야 설경이 있다. 황금사막도 있고 투명한 해변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오랜 식민문화 속에서도 당당히 자리 지켜온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지닌 인도인이 있고, ‘In india, everything is possible' 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땀에 흠뻑 젖는 노동 속에서도 농담 할 여유를 가지고 있으며, 바쁘게 지나가다가도 누가 무슨 일이 생기면 가서 참견해주기 바쁜 사람들 또한 인도 사람이다. ‘천의 얼굴, 인도’는 다름 아닌 사람이다. 12억의 각양각색 인도인이 있기에 인도는 알수록, 많이 만날수록 모르는 곳이다. 인도 친구들이 많이 하는 말 중 하나인 “you are my friend" . 12억 인도 인구를 넘어, 세계 모든 사람이 친구인 나라 인도. 이번 여행과는 또 다른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그로부터 또 다른 인도의 얼굴을 만날 날이 머지않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