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 전차와 우마차가 다니던 시절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개화기 시절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전차’는 그 시절의 상징과도 같은 풍경으로 등장한다. 1898년 처음 운행된 ‘경성전차京城電車’는 서대문에서 종로, 동대문을 거쳐 청량리에 이르는 총 5Km 길이의 노선이었는데, 그 후 남대문, 구 용산, 을지로, 노량진, 마포 등 서울의 각 지역으로 노선이 확충되면서 1920년대 이르러서는 서울 도시 교통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맡게 된다. 당시 서울의 전차는 일본의 교토 전차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개통된 것이자 수도 전차로서는 최초의 것으로서 기능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아주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이후 1968년 전면 폐선 되기까지 서울 전차는 70년의 세월을 서울 시민들과 함께 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불과 40년 전까지 서울의 거리를 활보하던 전차의 자취, 아니 그 그림자조차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전차에 관련된 우리의 기억은 버스와 지하철과 다른 편리한 교통수단들에 의해 깔끔하게 지워졌다. 물론 이는 서울시 인구의 급증에 따라 지하철을 통한 대규모 운송/교통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벌어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새롭고 합리적인 기술이 기존의 기술을 대체하는 일이란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대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일이 아니던가.

그렇지만 편리와 실용이라는 가치 아래 과거 삶의 기억과 그 자취마저 말끔히 지워져 버리는 일은 언제나 왠지 모를 서운함을 남기기 마련이다. 서울 전차는 분명 당시 삶의 한 부분이었고 그 일상은 우리들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데 이 기억, 이 삶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전해줄 수 있는 유품들이 우리에게는 부족하다. 전차들은 모두 고철이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고 선로들은 그저 콘크리트에 묻혀버렸고, 지하철은 이전 보다 더 바쁜 삶을 재촉하여 전차 같은 ‘사소한 일상’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망각시켰다. 개발과 발전, 우리도 좀 잘 살아보자는 그 급박한 외침 속에 앞으로만 걸어오다 보니, 우리들은 역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빠른 시간 내에 경제적인 풍요에 근접할 수 있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다양한 과거의 기억을 놓치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들과는 아주 다른 성격을 지닌 독일 사람들은 같은 대상, 같은 옛 기억의 잔존물을 통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민족, 고고학과 박물학에 사랑을 느끼는 민족, 과거를 어떻게든 손에 잡고 싶어하는 민족답게 독일 사람들은 우리들이 쉬이 놓치고 망각 속에 묻어두었을 그런 일상의 기억들을 하나의 작은 박물관에 모아놓고 있었다.
뮌헨 동부에 위치한 기징(Giesing)역에서 버스로 7분 거리에 있는 뮌헨 도시교통 박물관(MVG-Museum)은 말 그대로 과거 뮌헨 시내를 달리던 교통 수단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기징 역에서는 이삼십 년 전의 오래된 버스가 역과 박물관 사이를 오가며 셔틀 버스 역할을 한다.




한 달에 두 번 격주 일요일에 개관되는 이 박물관에서는 1876년 벨기에인인 에두아르 오틀레(Edourd Otlet)가 뮌헨 마차 노선Munchner Pferdebahnlinie의 부설 및 사업 계약을 맺은 이후의 뮌헨 도시 교통의 변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1876년부터 1900년 초까지 운행된 마차노선의 객실과 1883년 이래 운행된 증기전차Dampftrambahn, 라트게버Rathgeber의 설계로 1895년부터 운행된 초창기 전차Elektronische Trambahn의 각 모델들, 그 밖에 1960년대의 버스, 도로 보수 공사용 차량 등 (도합 20여점)이 4,100 제곱미터의 널직한 홀에 자리하고 있다. 또 전시물들 옆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당시의 역사, 문화, 공학 등과 관련된 설명과 도해가 제공되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한편 박물관 홀 오른편에 마련된 작은 공간들에는 각각 교통수단의 기관실, 정비소 등을 재현해 놓고 과거의 전차 노선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또한 그 옆에는 지하도를 뚫어 놓아 아래쪽에서 전차 모델의 밑부분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였다. 지하도 벽면에는 각 모델들의 개발 시기와 특징, 출력과 수송인원 등의 정보가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비교적 크기가 큰 교통수단 전시물 외에도 전시공간 곳곳에는 각종 도로 교통 관련 소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1920년대에서 60년대의 승무원 및 안내원의 유니폼과 과거의 이정표들에서부터 각종 장비들, 차표, 환전기계, 안내 데스크와 표지판, 열차시각표 등 다양한 전시물을 살펴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조작해 볼 수 있다. 이로서 박물관은 단지 옛날에 사용하던 ‘구닥다리’ 교통 수단을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시 교통 문화 전체를 보여주는 공간이 된다.





더 인상적인 것은 박물관 측이 ‘뮌헨 전차 협회 Straßenbahnfreunde Munchen’와의 공조 아래 제공하는 ‘가이드 투어Fuhrung’이다. 이 작은 박물관에 무슨 ‘가이드 투어’까지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언뜻 들지만 실제로 참여해 보면 아주 흥미롭다. 주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나 ‘뮌헨 전차 협회’의 회원으로 구성된 가이드는 독일어 혹은 영어로 옛날 거리를 오가던 전차와 버스들, 그리고 일상의 모습들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 준다. 전시물과 안내판의 설명을 넘어서서 그들이 실제로 이용하고 겪었던 ‘기억’과 ‘에피소드’를 나눠주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무상으로 제공되는 ‘가이드 투어’에 참여하는 관람객들은 가이드와 함께 옛 전차의 객실 내부에 들어가 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전시물, 이를테면 전차의 제동장치, 경고 신호, 엔진 등을 직접 조작해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당연히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박물관 측에서는 아예 ‘어린이를 위한 가이드 투어(Fuhrung fur Kinder)’를 따로 마련하여 제공하고 있다. 나이 지긋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시끌벅적한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해주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보기 흐뭇한 광경이지만, 한 세대의 삶의 기억이 그저 잊혀져 흘러가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옛 것에 대한 존중과 관심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 하여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세대와 아버지의 세대가 가꿔와서 물려준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어땠을까?”라는 어린이들의 단순한 질문은 어른 세대와 어린이 세대 간에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은퇴한 노인들은 동호회 활동을 통해 박물관 가이드가 되어 자신의 경험을 나눠주고, 아이들은 이를 통해 과거에 대한 지식과 공감을 얻는다. 이러한 모습은 결국 상이한 두 세대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윈윈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이층에는 뮌헨 곳곳을 오가는 뮌헨 전차를 그린 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뮌헨 시의 중심부인 마리아 광장(Marienplatz), 매년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가 열리는 바바리아 명성홀(Bavaria Ruhmeshalle), 대학LMU과 개선문(Siegestor) 등 뮌헨 명소를 다니는 전차의 모습이 인상적이다(이들 장소에는 오늘날에는 전차가 다니지 않는다). 이러한 전시물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아무리 사소한 과거의 모습도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이 기억들은 다음 세대에 전달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보존, 전달된 과거의 모습들을 통해 다음 세대들은 이전 세대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인식하고 좀 더 합리적으로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1950년대에 뮌헨 전차는 마리아 광장 중심부를 그대로 관통하여 구시청사 아래를 지나갔다. 시내 최중심부에 전차를 놓아 시민들의 편리를 추구한 것이지만 상대적으로 도보 관광객의 편의는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았다. 그 시대에는 관광산업이 오늘날만큼 활성화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문제가 발생했다. 뮌헨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건물 신시청사 바로 앞으로 전차가 쉴새 없이 오가면, 사진을 찍거나 건물을 감상하려는 관광객은 아무래도 방해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때문에 뮌헨 전차는 관광 산업의 발전과 함께 마리아 광장에서 물러나 관광객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게 된다. 박물관의 전시물은 이처럼 과거의 ‘시행착오’와 사회의 새로운 요구에 맞는 수정과정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독일인들은 사소한 과거의 기억이라도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뮌헨 도시 교통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한편 때때로 밖으로 나들이를 나가기도 한다. 지난 2001년에는 뮌헨 전차 개통 125주년을 기념하여 1920년대에 이용되던 옛 전차들이 다시 시내로 나온 바 있고, 2005년 12월 28일에도 1911년 모델 D-490 전차가 특별 운행을 하였다. 또 작년(2008)에는 뮌헨 시 창건 850주년을 맞아 1900년대 초의 마차 노선이 특별 행사의 일환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역시 과거의 모습을 잊지 않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의 단면이다.











너무나 바쁜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뮌헨 도시 교통 박물관(MVG-Museum)의 전시물들은, 어쩌면 일종의 사치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들은 무슨 여유가 있어서 예전에 쓰던 고철들을 모아 놓았나 하는 마음 말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그들의 ‘과거 사랑’이 언제나 미덕인 것은 아니며 한국인의 역동성과 현세적 적응력이 더 가치 있게 여겨지는 상황도 언제든지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이 작은 박물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너무 실용적이고 일상적이어서 별로 보존할 마음이 들지 않는 ‘평범한’ 대상들까지도 귀한 경험으로 만들어, 다음 세대를 위해 물려주려는 독일인들의 마인드이다.

서울 시내에도 한때 전차가 있었다. ‘오라이~’라고 소리치던 안내양도 있었다. 그것은 생생한 기억이었지만 지금은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 시절의 경험과 기억은 오늘의 우리 어린이들의 삶과는 완전히 격리되어 있다. 뮌헨 도시 교통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독일인들의 ‘기억 넘겨주기’는 평범한 삶의 모습 속에서 ‘단절’을 예방하는 한 가지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