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 시장 한 쪽에 마련된 창고,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작당 모의를 할 만한 공간이 있다. 바로 M갤러리다. 그곳에는 분쟁과 갈등 그리고 그 속의 봄(Spring)이 담긴 프레임과 그 현장의 산 증인들이 둘러서 있다.

5월 17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아시아의 봄> 전시회의 ‘봄’은 분쟁과 갈등의 현장을 카메라를 통해 바라봄(through the Lens)'과 상처를 치유하고 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고자 하는 ‘희망의 계절인 ’봄(Spring)'을 의미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과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번 전시는2012년 광주광역시에 건립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아시아 민주·인권·평화 자료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아직 오지 않은 아시아의 봄을 그리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박하선 작가, 그에게 있어 5.18 민주 투쟁은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스리랑카, 태국, 인도네시아의 민주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힘을 모으고 정신을 이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는 아시아의 공통된 이슈와 그 연대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아시아의 봄>은 'Part 1: The Social Scene'과 'Part 2: Today's Diary on Gwangju'로 구성되며 총 1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Part 1에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의 근대화 과정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분쟁과 갈등, 식민 지배와 사회적 모순을 카메라에 담았다. 5개국 8명의 작가들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8개국의 현재를 지하 창고로 가져왔다. 인도네시아에서 수리즈만 마라, 말레이시아에서 라만 로즐란, 필리핀에서 말론 고팅고, 라오스에서 바나폰 시티라스 씨가 참여했다. 한국 작가로는 박종우, 박하선, 성남훈, 임동진 씨가 함께했다.








Part 2는 일반인 27명과 사진작가들이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광주의 하루를 기록했던 것을 게릴라전 형태로 전시했다. 망월동, 금남로, 대인시장, 양림동, 상무지구의 유흥가 등 광주의 다양한 오늘이 사진 찍은 이의 짤막한 캡션과 함께 드러났다

[Today's Diary on Gwangju 포토 프로젝트 ] 행사는 5월 16~17 주말 양일간 최연하 큐레이터와 조대연 광주대 교수 및 성남훈, 박하선, 박종우 작가 지도하에 약 30명의 광주와 서울 지역의 일반 시민이 참여해, 광주 시민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일어섰던 1980년 봄 이후 29년이 지난 지금 2009년 광주에 찾아온 봄을 다시 들여다보는 목적이다.
첫날, 박하선 작가의 광주 작업실인 [아시아 문화비전]에 모두 모였다. 비가 많이 내려 어려움이 많았지만 사고 없이 모두 자신만의 시각으로 광주의 상징인 여러 곳을 담았고 저녁 8시 반까지 모여 각각 3~7장까지 사진을 선택, 슬라이드쇼로 꾸며졌다.

다양한 형태의 집단과 개인의 문제로부터 사회문화적ㆍ경제적 차원의 담론들, 눈에 보이면서도 숨어 있는 내밀한 이슈들, 관념적이며 자족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복합적인 도시 광주. 각각의 사연을 안고 찾아온 약 30명의 사람들이 5.18 및 여러 문화의 향유자이자 생산자인 ‘카메라’의 눈으로 본 광주는 어떤 모습일까. 망월동에서부터 금남로, 대인시장에서 신세계백화점, 뉴타운과 올드타운, 광주비엔날레 현장에서부터 상무지구의 유흥가까지, 광주의 다양한 오늘을 담은 이 프로젝트는 거창하게 ‘대안 찾기’로서의 ‘재발견’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진작가에게는 카메라로 성찰하는 자기 검증의 기회가, 관람자에게는 광주의 현재를 다시 살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전시회의 특별한 프로그램이었던 ‘광주의 하루’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를 만들어가는 생동력을, 참여자들 각자의 다양한 시선 속에서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고 모두 하나가 된 시간이 되었다.








이번 전시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광주는 어떤 곳일까? 그들은 어떤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을까? 서울에서 온 이윤환 씨는 광주에 빚지고 있다는, 일종의 죄책감을 가진 한국의 30대. 그는 5.18을 주제로 작업하고 싶었으나 팀 구성과정에서 광주의 일상을 다루게 됐다. 그는 10년 전 광주와 지금의 광주가 많이 달라졌다고 답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의 농밀한 피해의식과 후유증, 상처들은 이렇게 아물어 가고 있었다. 성남훈 작가는 광주의 평범한 일상이 곧 우리의 역사라고 했다. 뉴스만 역사일 수는 없다. 삶은 ‘뉴스’와 ‘사건’과 ‘상처’ 같은 것들을 한 데 떠메고 가기 때문이다. 광주대 사진영상학과 조대연 교수에게 사진이란 우리의 삶 중에서 순간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는 광주의 오래된 건물에서 5.18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일상을 담아내고자 했다. 인도에서 온 유네스코 광주협회장 바수 무쿨은 주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아시아 여러 나라 여성들의 성매매 현장과 어린 아이들에게 아르바이트를 시키는 장면, 광주의 어느 아스팔트에 흩어진 유흥업소 홍보 카드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에게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서의 광주가 어떤지 묻자 약간 흥분했다. 그가 본 광주는 아직 아시아의 중심이 아니라 한국인 중심이다. 이주한 아시아 사람들은 이러한 사진전이 개최되는지조차 모르며 그들의 의견은 무시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그는 “한국 문화를 제대로 알리려면 열악한 환경에서 돈을 벌려고 찾아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당한 장학금을 받고 한국에 오는 유학생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봄, 달짝지근한 봄비 속에 아시아의 문화 씨앗들이 광주 여기저기 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