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CF의 광고 카피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처럼, 광주는 지금 사랑을 가슴에 담고 있다. 광주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새침한 그녀의 모습에 첫눈에 반해버렸다. 두근거리는 설렘에, 잠을 설치는 새벽. 그 새벽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바람에 실린 라일락 향기는 그녀의 체취마냥 달콤하고 향기로웠다. 거친 풍파 속에 오랜 세월을 살아왔건만 나이와 상관없이 다가온 사랑은, 광주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다가가 고백할 날을 기다린다. 그녀에게 바칠 붉게 타오르는 장미도 준비했다. 그녀에게 장미를 내밀고 달콤한 입술에 첫 키스할 날을 상상하면 심장이 멎을 것 같다. 그녀를 떠올리기만 해도 귀에서 울리는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광주는 지금 사랑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 뜨거운 가슴에 사랑을 지핀 것은 바로 그녀, 문화. 두 개의 존재가 하나가 되어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기약한 날 2023년.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그런 것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은 지난 2003년 11월 7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 조성계획 보고회를 시작으로, 2004년 3월 11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회 발족, 2005년 11월 30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예비계획 수립, 그리고 2006년 9월, 2007년 3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20여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로 그 규모가 큰 만큼 기획 준비 과정에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각계각층의 의견 수렴을 거치기 위해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탄탄한 밑그림을 그린 후에 비로소 2007년 10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에 대한 대국민 보고회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6월 10일.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핵심시설로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기공식이 개최되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오월의 고귀한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킨 복합 문화시설이다. 광주가 아시아 문화와 사랑에 빠졌다면 그 사랑을 이어 아시아와 세계에 알리는 우편배달부의 역할은 아시아문화전당의 몫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은 콘텐츠를 창조하고, 미래의 문화인을 창조하기 위한 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아시아 문화의 연구를 통해 그 자원을 수집·보존하고 발전시킨다. 또한 콘텐츠를 즐기고 이용하는 등의 향유를 통해 문화적인 삶을 이루어나갈 장으로 누구나 이용하고 창조할 수 있는 평등한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 공간이 지난 몇 개월 동안 기약 없는 겨울잠에 빠졌었다. 땅을 파던 포크레인은 그 엔진을 멈추고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린 채 공사 현장의 한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졌다. 작업을 하던 일군들은 손을 놓고 공사가 재개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구 도청 별관 문제로 5.18 관련 단체의 천막농성이 시작된 게 지난 6월 24일. 그동안 구 도청 별관에 관한 문제로 5.18 단체 및 시민사회단체와 끊임없는 대화를 하며 현 상황에 대한 이해와 설득을 구하였다. 지난 11월 18일에 있었던 시민대토론회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기대를 하였으나, 5.18 정신 반영한 상징조형물 건립, 전당 내에 축소모형 전시, 철거 후 주요 상징 부재들을 진열·보존, 건물 파편을 활용한 아트상품 제작 등의 대안도 무용지물이 된 채 시간은 흘러갔고 더 이상 공사 진행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였다. 구 도청 별관을 원형대로 보존할 경우 설계 개념이 변경됨에 따라 전체적인 공간 계획, 배치 계획, 동선 계획이 재검토되어야 하기 때문에 건축시공상세도 작성이 불가능하게 된다. 또한 공사 일정상 도청별관 부분 등을 제외한 지하연속벽 설치가 완료되어 22~23m 터파기를 진행해야 하나, 지하수위가 5~7m에 위치하고 있어 터파기 등의 후속공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구 도청 별관을 남겨둔 상태로는 후속공사를 추진할 수 없기에 공사중지라는 불가피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대화의 창구는 계속 열려 있었다. ‘도청보존을위한공동대책위’의 집행부와 끝이 없는 마라톤 대화에 마침표가 찍혔다. 마침내 공사가 재개된 것이다.
2월 17일 오전 10시. 구 전남도청 앞마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5.18 영령의 넋을 기리기 위한 재배를 올리며 아시아문화전당 건립 공사의 재개를 알렸다.


광주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은, 짝사랑도 외사랑도 아니다. 서로간의 친밀한 교감이 이루어지고 그 교감 속에 싹튼 쌍방향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이루고, 아시아문화전당을 건립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한 명의 열렬한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술인들이 사랑을 싣고, 시민들이 사랑을 하고, 5.18단체와 시민단체가 그 사랑을 지지하고, 정부와 관련 단체가 사랑을 보내야만 이루어질 수가 있다.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춘향과 함께 사랑을 속삭이며 부르는 노래가 있다. ‘굽이굽이 깊은 사랑, 시낸가 수양같이 척 처지고 늘어진 사랑, 화우동산 목단화 같이 펑퍼지고 고운사랑, 포도다래 같이 휘휘친친 감긴 사랑, 연평바다 그물같이 얼키고 맺힌 사랑아, 은하직녀 직금같이 올올이 이룬 사랑. 청누미녀 침금 같이 혼술마다 감친 사랑, 은장 옥장 장식같이 모모이 잠긴 사랑, 남창 북창같이 다물다물 쌓인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 내 사랑이로구나!’
아시아와 세계의 사랑의 메신저인 아시아문화전당 건립이 2012년,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조성이 2023년.
2009년 봄, 광주의 문화에 대한 사랑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