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아침 8시.
다같이 호텔 로비에 모여 가벼운 식사를 한 후 첫 일정을 시작했다. 싱가포르 문화부에서 간단한 일정 오리엔테이션과 싱가포르 공동위원장인 조셉 유스타세 얼 피터스(Joseph Eustace Earl Peters) 교수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차이나 오케스트라를 찾았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남쪽에 위치한 국가지만 인구 비율이 중국계가 월등하게 많은 나라이다. 그래서일까, 중국 본토의 많은 음악가들이 선망하는 오케스트라가 바로 싱가포르의 차이나 오케스트라라고 했다. 문화부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차이나 오케스트라 건물은 싱가포르의 윌스트리트라고 할 수 있는 곳으로, 은행이 밀집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차이나 오케스트라 직원분의 오리엔테이션과 차이나 오케스트라의 구조, 사업,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차이나 오케스트라와 한-아세안 오케스트라의 연결점에 대해 토의하였다. 1시간여 동안의 회의를 마치고 직원의 안내를 따라 차이나 오케스트라의 건물을 견학하였다. 놀라운 점은 전속 작곡자가 있어서 작곡부터 마케팅까지의 모든 과정이 한 건물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오케스트라나 음악 관련 단체들이 음악가와 마케팅이 분류되어 있는 것에 반해 차이나 오케스트라가 모든 것을 소화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다음은 지금까지 차이나 오케스트라가 해온 곡들이 저장되어있는 보관소.

체계적으로 보관된 자료들은 시간이 흘러 나중에 다시 작업을 하더라도 무리가 없고 단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보관과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그 곳을 둘러본 후 본격적으로 차이나 오케스트라의 연습이 시작되었다. 약 30분여 동안 중국의 전통악기로 이뤄진 연주는 서양 악기와 다른, 우리 아시아의 느낌이 담겨 있는 웅장함을 가지고 있었다. 특이했던 점은 음악에 맞춰 빛에 비춰진 그림자를 이용한 인형극을 펼치며, 스토리가 있는 연주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현대적인 아이디어와 전통음악의 특색을 잃지 않고 곡을 만들어 내고 연주를 하는 것이 한아세안 오케스트라의 역할이리라.




차이나 오케스트라를 방문하고 점심식사를 한 우리 일행은 다시 문화부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다린 것은 인도의 전통악기와 말레이시아의 전통악기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싱가포르가 아닌 다른 국가의 악기라고 할 수 있지만 인구구성이 다양화된 싱가포르에선 이미 인도와 말레이시아의 전통악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두 전문가의 각 악기별의 특색과 사용방법, 또 사용 예와 간단한 시연을 통해 설명과 자료로만 접했던 두 나라의 전통악기에 대한 구제척인 이해와 활용방안을 세울 수 있었다. 이 두 국가의 전통악기에 대한 설명과 회의가 끝나고 조셉 피터스 위원장과의 한아세안 오케스트라 운영방안에 대한 회의가 이어졌다.





한아세안 오케스트라의 목적은 아세안 10개국과 한국의 전통악기를 모아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여 서양 오케스트라와 차별화된 아시아의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이다. 이에 대한 운영방안으로 나온 이야기들은 한아세안 오케스트라의 악기 구성. 어떤 악기를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한계가 결정되기 때문에 멜로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현악기와 리듬을 만들어낼 타악기들의 구성을 적절하게 해야 한다. 또한 각 국가의 모든 악기를 다 사용하게 되면 소리가 지저분해지고 작곡을 함에도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에 각 국가의 선정된 모든 악기를 한-아세안 전통음악 오케스트라에 속하되, 작곡자의 의도에 따라 사용되는 무대가 각각 다를 수 있다는 점에는 이견 없이 합의 되었다.

이 날 가장 예민하게 생각했던 부분인 예산에 관련된 부분. 즉, 작곡자에게 주어지는 페이와 각 국가 음악가들이 한 곳에 모여 연주를 하게 될 때 생기는 비용과 음악가들이 자국에서 활동할 때 필요한 예산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 부분들은 처음 추진단에서 세웠던 제안에 이견 없이 수용이 되었고, 2월 한국에서 있을 워크숍을 추진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 보였다. 서로 생각이 맞고 준비된 자료가 풍부했던 회의였던 만큼 상반된 의견이나 갈등 없이 첫날 회의는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둘째 날, 이번 투어의 핵심 내용을 전날 합의해서인지, 일행들의 얼굴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자유로운 식사 후 모여 문화부로 이동한 우리 일행은 전날 한 합의에 추가할 내용과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논의 하였다. 이 날 조셉 피터스 싱가포르 위원장은 “한-아세안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위한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한국과 아세안의 긍정적인 협력과 교류를 위한 한아세안 오케스트라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범훈 위원장은 “한국이 많은 부분 중심이 되어 추진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을 위한 오케스트라가 아닌 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참여할 수 있는 진정한 아시아의 오케스트라가 되어야 한다.”고 기대하였다. 덧붙여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했다.

준비했던 회의가 끝나고 오후에 잡힌 중국 전통악기에 대한 오리엔테이션 전까지 싱가포르의 박물관을 관람했다. 싱가포르의 역사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생활 관습과 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짧은 박물관 견학을 마치고 다시 문화부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한 우리 일행은 중국의 전통악기에 대한 소개와 그 전통음악을 교육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들으며 우리나라 국악의 교육 방향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졌다. 이번 논의는 전 세계적으로 서양음악이 주류로 인정받으며 각 국가의 전통음악이 괄시받는 현시대에서, 다음세대에게 자신의 민족음악을 가르치는 것이 다른 교육들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짧은 일정 속에서 수차례의 회의를 단거리 경주처럼 숨 가쁘게 진행한 우리 일행의 마지막 일정은 전통악기 교육장이었다. 싱가포르의 국가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그곳에서 말레이시아의 전통악기와 인도네시아의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팀들을 만나 그들이 하고 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비록 전문 음악가들이 아니기 때문에 연주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각 악기의 특성과 활용방안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될 수 있었다. 특히 말레이시아 전통악기의 연주는 인상적이었다. 조명을 끈 채 야광팔찌와 리듬만을 가진 연주를 보면서 각 국가의 전통악기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재미있고, 수준 있는 공연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내 안에서도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는 마지막 일정인 공연관람. 나가라는 인도의 전통악기 공연을 관람하는 시간이다. 원래 이 공연의 시간은 몇 시간씩 걸리는 공연인데다 공연 도중에 나가는 것은 대단한 실례였지만 주최 측의 배려로 약 1시간가량 연주를 들은 우리 일행은 비행기 시간 때문에 급하게 공항으로 이동해야 했다.
2박3일의 짧은 일정, 우리 일행 개개인에게는 너무나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한아세안 오케스트라라는 커다란 프로젝트의 뼈대를 굳건히 한 여정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의미 있고 보람찼다.
한아세안이 창설되는 2009년 6월 이후, 이곳에서 한·아세안 전통음악 오케스트라 공연이 성사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