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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_편집부

조각조각 이어붙인 온갖 색깔과 문양의 자투리천들이 하나의 옷을 이루었다. 제각각이면서, 마침내 거대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옷.
‘호리볼’의 리더인 숏 다논도 다스는 공연 때마다 그 옷을 즐겨 입는다. 지난 4월2일 입국한 이래 첫 공연이었던 아시아문화예술축제(4월5일, 광주 인도박물관)에서도 그 옷차림이었다.
먼저, 그 옷에 대해 물었다. 그는 “천조각들을 얻는 대로 잇고 또 이어서, 계속 꿰매가면서 만든 옷”이라며 “나와 너가 따로 없는 하나의 경지가 그 안에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우리네 조각보 이불과도 비슷한 ‘알 칼라’라는 옷이 지닌 뜻이다. 조각천들은 거의 모든 것이 끝없이 거듭 태어나고 순환하며 마지막까지 버려지는 것이 없는 인도의 삶의 방식 하나를 말해주기도 한다.
4～5월 두 달 동안 광주에 머물게 될 ‘호리볼’은 다양한 공연무대를 통해 인도 집시예술단 ‘바울’의 노래가 지닌 매력을 이 땅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바람에 사로잡힌 자. 즉, 모든 것을 내면의 충동에 내맡긴 자. ‘바울’은 그런 자들이다.
주황색의 긴 로브나 여러 조각 천들로 이어진 옷을 입고 노래와 춤으로 탁발하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닌다. 어느 카스트에도 속하지 않은 벵갈의 수행자 무리인 이들에게 노래와 춤은 일상이자 신께 올리는 공양이다. 또 자신의 몸 안에 깃든 ‘마음의 사람(모네르 마누쉬)’과 하나되는 기도이기도 하다.

'호리볼’은 인도 전역에 걸쳐 가장 유명한 바울 그룹이다. 따로 정해진 멤버는 없다. 얽매임 없는 삶과 노래처럼 ‘호리볼’은 자유롭게 뭉치고 흩어진다.
이번에 광주 아시아문화교류재단(이사장 현장 스님)의 아시아문화예술인 체류지원사업으로 한국을 찾은 멤버들은 다섯 명. 리더인 숏 다논도 다스(가수, 엑따라·도따라·둑기 연주), 노보 쿠마르(피리 연주), 니따이 짠드로 다스(따블라·스리콜 연주), 우땀 다스(가수, 도따라 연주), 호리 다시(꼬로딸 연주) 등 다섯 명으로 이루어졌다.
숏 다논도 다스의 삶의 반려자이기도 한 호리 다시는 일본인으로, 2003년 인도에 건너간 이래 바울의 정신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공연 무대에선 꼬로딸을 연주한다. 꼬로딸은 손 안에 들어가는 작은 심벌즈처럼 생긴 악기.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바울에 입문한 박양희(가수, 엑따라·둑기 연주)씨는 한국에서의 이들의 일정에 내내 동행하는 친구이자, 함께 공연하는 동료이기도 하다.
박양희씨는 “샨티니케탄에서의 생활을 통해 국적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며 아무 벽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다”며 “중요한 건 삶의 지향이더라”고 말한다.
인도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그 차이를 묻는 게 무의미한 동질적 연대.
박양희씨는 “호리볼의 노래 속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단어 ‘케빠’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고 그렇게 살고 싶은 말인데 어떤 뜻일 것 같냐”고 묻는다. 답은 “미친 놈!”
돈에, 여자에, 혹은 명예에 미친 게 아니라 절대자나 정신적·영적 스승이라 할 ‘그 분’께 미친 사람이란다.
‘호리볼’ 역시 ‘스승의 이름을 찬양하라’는 의미. 이는 삼라만상 모든 것에 깃든 혼을 축복하는 말이기도 하다. 또 노래를 들으며 흥이 오를 때 저절로 섞여드는 ‘얼쑤’같은 추임새이기도 하다.‘내 안에 힘을 주는 무엇’인 것.
노래와 춤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같은 이들의 무대에는 기쁨과 평화가 흐른다.
노보 쿠마르는 “내가 느끼는 기쁨과 평화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염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이 노래”라 생각한다.
우땀 다스는 “노래는 모든 수행의 마지막 단계”라며 “마음이 아플 때 위로가 되고 가르침이 되기도 하는 게 노래”라고 정의한다.
니따이 짠드로 다스는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고 깨우침도 있고 삶의 모든 것이 녹아든 것이 노래”이지만 “하나의 노래에서 얼마만큼을 느끼고 얻는가는 듣는 사람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노래를 설명하는 많은 서술들 중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울은 같은 노래를 평생 한 번 이상 부르지 않는다’는 것. 틀이나 기교에 갇힌 반복은 없다. 하나의 시(詩)를 64가지 이상으로 부를 수 있어야 바울이다.
타악기 따블라를 연주하는 니따이 짠드로 다스는 “모든 노래는 마음과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인데 그것이 항상 똑같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우땀 다스는 “공연을 앞두고 가끔 리허설을 할 때도 있지만, 결국 무대에선 ‘마음 가는 대로’ 또 다른 노래가 되어버리는 게 바울의 노래”라고 덧붙인다.
바울들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악기이자 가장 ‘바울스러운’ 악기는 엑따라. 줄이 하나인 이 현악기는 ‘줄도 하나, 마음도 하나, 모든 것이 하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숏 다논도 다스는 엑따라를 두고 “줄은 단지 하나이지만 이 안에 숨겨진 음들은 무궁무진하다”며 “이 한 줄로 아무 모자람 없다. 이 세상의 수많은 음들을 담아내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수십 번을 노래해도 늘 다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는 힘 역시 엑따라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그 한 줄의 자유자재함, 광대무변함 위에 이들의 노래는 얹힌다.
우주에 편재한 신과 신성한 자연과 인간의 웅숭깊은 영혼의 자장을 노래로 표현하는 이들은 돈과 물질을 좇는 현대인들에게 묻는다.“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살다 가야 좋을까?”라고.
이들의 노래 속에 해답은 들어 있다.
호리 다시는 “우주적 영혼(뽀롬 아뜨마)을 구하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삶에서 그치지 말아야 할 일”이라며 자신들은 노래를 통해 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한다.

스스로 깨닫기 위해 노래하는 이들의 삶은 소유와는 거리가 멀다. ‘졸라’(어깨에 메는 천보자기) 하나면 유랑도, 삶도 충분하다.
“졸라는 아무 것도 아니면서, 아무 형태도 아니면서, 모든 것을 담는다”고 말하는 숏 다논도 다스. 졸라에 들어가는 것은 물주전자와 공양구, 어깨에 두르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이불도 되는 천 하나 정도.
그렇게 인도 전역을 떠돌며 노래해 왔다. 해외공연도 여러 차례. 그 깊고 아름다운 목소리는 영국 우매드(WOMAD)축제에서 수천의 관중들을 매료시켰다. 유럽 각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도 공연을 했다.
영국 우매드축제, 독일의 ‘성스런 음악축제’ 등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노보 쿠마르는 유럽 관객과 한국 관객의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한국 관객들은 처음엔 조용하다. 무언가 조심스레 탐색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서서히 분위기가 달구어진다. 처음부터 열정적인 유럽 관객들과 달리 은근히, 천천히 한 덩어리가 되어가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니따이 짠드로 다스는 매년 캘커타 부근의 조이뎁 켄두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수천 명의 바울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밤낮으로 노래와 춤과 음식을 나누는 바울 축제에 대해 말해 준다. 이 바울 축제의 역사는 400여 년에 이른다.

“수백 개의 천막이 쳐지고 3박4일간 함께 음식을 해 먹으며 함께 춤과 노래를 즐긴다. 축제 동안에는 밤낮의 개념이 없다. 밤을 새면서 공연한다.”
자유로운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는 축제이자 밤과 낮이 따로 없듯 구별과 경계가 없는 축제인 것.
니따이 짠드로 다스는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진행해갈 여러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도 “축제가 지닌 자발성의 에너지, 순수한 열정과 신명을 끌어내는 방식을 고민하길 바란다”며 “공식적이고 경직된 무대 공연 양식을 벗어나 아시아 각국 사람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주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또 “문화예술을 특별한 무엇으로 모시기보다, 특정한 건물에 가두기보다 놀이와 노동, 일상과 문화예술이 어디서든 어느 때든 경계없이 자연스레 뒤섞인 삶이 행복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덧붙인다.

노보 쿠마르는 이번 한국 방문과 관련해 “유럽 등지에서는 공연만 하고 말았는데, 한국에 와서는 한국의 문화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지난 4월30일엔 담양에 있는 전남도립대학에서 추민아·강철은(도예다도과) 교수 등의 도움을 받아 도예 체험을 하기도 했다.
숏 다논도 다스는 물레 체험이 처음이라면서도 오래 전부터 이 일에 익숙한 사람마냥 손놀림이 자연스러웠다. 손으로 조물락조물락 그릇도 빚고 자신들의 악기도 빚었다. “침도 못 삼키고 집중해서 만들었다” 한다. 지금 이 순간에 순수하게 집중하기. 그 몰입의 즐거움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적으로 체험하며 사는 듯 했다.
호리 다시는 “보성 대원사에서 화전놀이를 경험한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온갖 꽃들로 장식된 자리에 꽃차랑 화전이 어우러졌다. 이 봄날에 더할 수 없이 어울리는,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시간이었다.”
그 이야기를 할 때 호리 다시 얼굴에도 꽃이 피었다. 아름다운 기억이 얼굴에 띄워낸 생기였다.
숏 다논도 다스와 호리 다시에게 한국 방문은 두 번째이다.
지난 해 청주불교방송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가 광주 아시아문화교류재단 주최 인도문화예술축전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그 때 국립5·18민주묘지에도 갔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불의에 저항했던 이들이 그렇게 수많이 죽었다니….” 숏 다논도 다스는 구묘역의 인상을 잊을 수 없다 한다.
올 5월에도 오월 넋들을 만나러 묘역에 가려 한다. 박양희씨는 “무대가 마련돼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가려 한다. 이 친구들 모두 함께 가서 우리들끼리 묘 앞에서 함께 노래하려 한다”고 말한다.
숏 다논도 다스는 “역사든, 삶의 경험이든 서로 알고 이해하는 게 많을수록 공유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모든 종교와 사상, 사람이 어우러져 하나를 이루라는 의미를 담은 악기 엑따라, 서로 다른 조각 조각들을 모으고 이어 하나의 온전한 전체를 이루어내는 옷 알 칼라처럼 단순함 속에 담긴 포용의 깊이, ‘다름’으로 이룬 아름다운 조화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꿈꾸는 광주에도 일러주는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