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라는 나라가 참 낯설었다. 스리랑카에 대한 기억은 고작 우리나라에서 이주 노동자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의 기억뿐이었고, 혹시라도 주변에 스리랑카로 휴가나 여행을 떠난다는 친구를 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이 공동으로 기획하여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 문화 이해 소개자료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부엌을 통해서 본 스리랑카의 삶과 문화’를 촬영하기 위해 스리랑카를 방문하게 되었다. 본 사업은 세계화 및 다문화사회로 이행되는 사회적 상황에서 국제이해교육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아시아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는 사진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해 국제이해교육을 위한 다양한 자료를 산출하는 것이 그 목적인데, 이를 위해 2008년에 방문을 목표로 하고 있는 나라는 스리랑카,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등이며, 이 중 스리랑카가 첫 시작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스리랑카로 가는 직항 비행기도 없으며 스리랑카로 가기 위해서는 새벽에 공항에서 6시간 이상을 새우잠을 자면서 기다려서 환승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고생을 만회할 만큼 스리랑카의 매력은 일상적인 사람의 모습들에서부터 자연, 문화에 이르기까지 충분했다.






어쩌면 문명이 현대화될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은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와 불신이 아닌가 한다. 한국에서 모르는 누군가가 아파트 대문을 두드렸다면 ‘저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팔아먹으려고 할지도 몰라’라거나, 혹은 ‘사이비 종교를 믿으라는 걸까?’라는 생각이나, 혹은 더 위험한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점점 더 낯선 사람들에 대한 경계가 자연스러워질 무렵..
스리랑카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여행의 주제로 잡은 것은 ‘부엌’이었다. 한 가정 안에서 가장 사적일 수 있는 ‘부엌’이라는 공간을 살펴보면 부엌과 관련된 가정 내 공간, 의식주, 가족의 일상, 남녀 및 아이들의 역할, 가정 내 노동 등 일상적인 삶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가정 방문을 위해 사전에 약속된 가정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무작정 들이닥쳤던 가정들에서도 내부를 봐도 된다는 승낙을 쾌히 받아낼 수 있었다. 사실 그들의 가정은 우리만큼 현대적이지는 않았다. 시골의 몇몇 부엌에서는 쌀을 빻기 위해 예전에 우리가 쓰던 것과 같이 돌로 만든 절구통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기도 했고, 코코넛을 갈기 위해 손수 몇 시간 동안 수작업을 해야 하기도 했고, 따라서 식사를 준비하려면 오전 내내의 3시간 정도를 보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부엌에 현대적인 설비와 멋진 인테리어가 없는 대신, 그들에게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나 불신도 없었다. 자신들의 가정에 방문해준 것에 감사해 했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고 싶어했고, 자신들이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고, 눈을 마주치면 항상 웃어 주었다.



타인에 대한, 심지어 외국인에 대한 이러한 호의적인 태도와 열린 마음은 이들의 신앙심과 종교에 대한 태도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스리랑카에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천주교등 네 개의 종교가 대표적인데, 전체 인구 중 약 69%의 사람들이 불교를 믿고 있다. 하지만, 일반 가정이나 시장의 상점에 방문해보면 불교를 믿는 사람이라도 여러 종교의 사진들을 한꺼번에 걸어놓은 특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들은 종교에 대해서 매우 관대한 편이라 한 가정 안에서 부부가 다른 종교를 믿어도 각각의 종교를 그대로 인정해 한 집 안에 성모상과 불상을 함께 진열해 놓기도 하며, 어떤 상점의 주인이 불교를 믿는다 하더라도 여러 신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 부처님의 그림뿐 아니라, 취향에 따라 성모상, 힌두교상, 예수님의 사진까지도 나란히 같이 걸어놓기도 한다. 이들의 국교인 불교가 역사를 이어오며 스리랑카인들에게 하나의 철학으로서 수용성과 관대함에 있어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스리랑카의 중심부는 문화의 삼각지(cultural triangle)라고 불리며, 7개의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그 중 하나인 시기리아(Sigiriya)는 약 200m 고도의 바위 산 위에 세워진 요새 도시로 5세기경에 건축된 것으로, 자연적으로도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지만 문화적으로도 탄성을 자아낸다. 시기리아는 ‘Lion rock’을 의미하는데,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사자 발모양의 문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잠깐의 등산과 고소 공포증을 견딘다면 왕의 연회를 위해 산 위에 건설해 놓은 각종 유적들과, 5세기의 상황을 떠올려보게 하는 벽화 및 이 벽화를 반영하는 거울벽(mirror wall)을 볼 수 있다.
평지에 뜬금 없이 우뚝 솟아 있는 바위를 보는 것만으로도 멋지지만, 그 바위 위에 세워진 도시를 구경하는 것과, 그 도시가 세워졌을 5세기 당시에는 빽빽하게 바위의 벽면을 치장하고 있었을 벽화들을 상상하는 것은 더 큰 즐거움이다. 문화와 자연이 만나는 곳, 시기리아에 대한 기억은 스리랑카를 다녀온 한참 후에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또한 스리랑카에서는 부처의 이빨을 간직하고 있는 ‘불치사’로 알려진 ‘달라다말리가와(Dalada Maligawa)’라는 절이 있다. 이 불치는 4세기경 인도에서 건너온 것이라고 하며, 이후 이 불치를 모시는 사람이 진정한 스리랑카의 국왕이 되었고 불치는 싱할라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게 되었다. 지금도 달라다말리가와에는 수많은 신도들과 승려들이 스리랑카 각지에서부터 모여들고 있다.






스리랑카를 진정으로 알기 전에 가질 수 있는 정보들은 인종 간의 내전,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 몇 년 전 쓰나미 피해로 인한 구호 활동 등이다. 한걸음 더 스리랑카로 다가가면 가질 수 있는 첫 인상은 바로 앞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와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곡예와 같은 운전솜씨, 버스에 매달려 가면서 버스가 달리는 동안에도 수시로 뛰어내리고 뛰어오르는 사람들, ‘예’라고 말할 때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어서 ‘예’인지 ‘아니오’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제스처, 항상 약속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은 기본으로 늦게 나타나는 (코리안 타임도 아닌) 스리랑카 타임 등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한 발짝 안으로 들어가 보면 사람들은 어디서든 꽃을 따서 신에게 바치며, 보리수 나무를 돌면서 자신의 소망을 기원하며, 아이들은 어른을 공경하여 나뭇잎을 따서 바치며 발 앞에 절을 하는 등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아직은 스리랑카 내부적인 환경 및 홍보 부족으로 인해 스리랑카를 찾는 사람을 잘 볼 수 없지만, 스리랑카를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문화와 자연의 만남, 그리고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