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문화 아시아

글,사진_편집부

‘건축과 조경의 경계를 허문 열린 구조에, 햇빛·지열 등의 친환경기술을 도입’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국제설계 당선작 ‘빛의 숲’. 이 작품은 5·18항쟁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 분수대 등을 지상에 남기고 지하에 전당을 마련한 것이 특징이다. 건립터 전체에 영원과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조성하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열린 도시공간을 조성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본질을 형상화한 국립아시아전당의 건축적 특징과 가치를 소개한다.

주택이 삶을 담는 그릇이라면, 공공의 건축은 그 쓰임새가 지향하는 목표와 세대를 이어갈 가치를 담는 그릇이다.
따라서 설계를 맡은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그 지향점이 현실이 되는 미래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고, 그 건축이 소용될 기간이 길다는 점에서 다양한 가치와 문화적 변화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본다면 광주의 역사와 기억, 아시아의 문화, 문화의 미래를 담아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어떤 모습과 소용됨을 갖춰야 할까? 무엇보다 문화를 담아내는 동시에 새로운 문화활동의 출발점이 되는 건축은 어때야 할까?
설계를 맡은 건축가 우규승은 문화를 “과거와 미래, 중심과 가장자리, 그리고 내향과 외향 사이를 소통하게 하는 매개물”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설계 컨셉트로 삼아 새로운 문화상품들을 생산하고 선보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작업했다. 전당의 구조와 배치를 보면 이런 생각들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우선 전남도청 일대에 들어서게 될 건축물들의 구조는 물론 건물과 건물이 서로 관련을 맺는 배치는 전당 부지 전체에 역사적인 기억이 흐르도록 의도했음을 보여준다. 분수와 전남도청 건물 등 역사적인 장소로 이어지는 길들은 전당이 도시로 연장되고 확정되는 상징성을 띠고 있다.
아울러 5·18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자 공간의 기록인 이 건물들을 감싸는 10헥타르의 공원을 형성해, 이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동선에 역사적인 의미와 공동체와 민주주의가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모든 이들에게 열린 이 공간은 녹지가 부족한 광주의 초록빛 허파 역할을 하는 동시에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지니도록 안배된 것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도시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전당이 지역적인 중심 뿐만 아니라, 확장된 아시아 전반의 의제와 상징성에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적이고도 문화적인 위치를 점하게 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현상공모에서 요구한 것은,‘ 모든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용 공간 형성과 민주화 운동의 거점인 광주의 역사성을 부각’시키는 데 있었다. 건축가 우규승은 이런 요건사항을 동선과 접점으로 해석하고 풀어냈다.
그가 의도한 아시아문화전당은, 거리의 보행자 동선과 공간, 그리고 지하에 삽입된 프로그램 사이에 연속된 흐름을 형성하며 도시조직과 연계되는 성격의 건축물이자 건축물의 집합체였다. 그러나 이는 매스의 집합과 변환 같은 건축적 성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당에 담기게 될 문화 활동과 컨텐츠 그리고 아시아 문화 교류가 가져올 풍경을 담아내는 경관이 된다. 또한 앞서 언급한 공원이 도심을 향해 열린 구조를 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광주의 민주화 운동이 지향했고 지금도 추구하는 시민들의 참여의식과 사회적 진보가 일궈낸 결과를 담아내는 ‘터’로서의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희생·인권·평화에 대한 상징물들과 함께 열린 교류, 접근성, 투명성 그리고 광범위한 참여의 의미를 내포한 이곳의 경관은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지역과 국가뿐 아니라 세계를 대변하는 풍경이 된다.

아시아문화전당을 설계하면서 고려해야 할 또 한 가지는, 기존 문화시설과는 달리 복합적이고 미래에 발생하게 될 문화행위와 창작 영역을 감안해야 하는 ‘변화’다. 따라서 이 가능성들을 어떻게 수용하고 대처해낼 수 있는 구조가 반영할 것인지가 건축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내부 프로그램들의 경계는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가변적인 구조를 취하고, 전시실 같은 경우에는 요구와 필요에 따라 소규모 전시실을 개별적으로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건축적인 유연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보 및 디지털·나노 테크놀로지의 급성장에 대한 지속적인 요구를 반영하는 비확정적 인프라 시설을 강화해서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담은 아시아문화전당은 신기술과 미디어, 그리고 문화 생산 사이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무선 컴퓨터 환경을 형성하여 문화전당 구성원과 방문객들의 접근성을 최대화하며, 물리적인 체험과 가상현실이 적절히 조합되어 문화생산과 예술적 창조의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전당은 이 공간의 실제 점유자들을 위해 실질적인 세계를 만드는 동시에, 문화에 대한 참여와 양성 그리고 창조를 위한 훨씬 더 광대한 가상공간을 제공하는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의 설계가 이렇다면 조형적인 측면에서의 설계는 동양적인 상징과 은유를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중앙에는 계단식 광장을 조성해서 지하공간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연결하는 한편, 당선작의 제목인 ‘빛의숲’이 자리하게 된다. 영원과 동양을 은유하는 대나무 정원과, 계단식 광장 면한 파사드를 통해 스며드는 빛은 광주의 역사성을 상징하면서 부지 전체를 감싸는 역할을 한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우규승은 빛과 숲을 모티브로 삼아, 자연과의 긴밀한 관계가 아시아의 가치로 봤으며 이를 건축과 조경의 경계를 오가는 안온하나 거대한 구조물의 집합으로 표현한 것이다. 유리로 마감된 아시아문화전당의 계단식 광장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비추기 위해 최대한 투명하게 만들어져 광장의 경계를 형성하는 동시에, 아시아문화전당의 각 부분으로 이어지는 순환 동선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광장은 5·18민주광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하철 출구와 연결되어 아트플렉스(art plex)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구현되는 전당은 광주천과 광주공원, 사직공원, 그리고 무등산을 연결하는 녹지 축의 일부로 형성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아시아문화전당을 직접적으로 자연과 연계시키는 것은 생태학적인 관점에서도 의미가 클 것이다.
무등산을 향한 조망은 전당의 공원을 둘러싼 도심에서 더욱 강화되는데, 건물지붕을 녹지대로 덮은 이 공원은 강우를 저장하고, 효율적으로 기계·설비를 관리하는 등 에너지 소비를 감소시키는 녹색 지붕의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