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동학이라든지, 광주학생운동이라든지, 또 5·18로 이어지는 근대사 100년 동안에 진행된 수많은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선도적으로 잘 겪은 고장입니다. 식민지, 반독재등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 겪은 식민지 근대화의 전 과정을 광주라는 곳이 겪어냈고, 광주가 바로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광주처럼 이기는 싸움을 하면서 역사와 삶을 바꿔놓은 곳은 없습니다. 광주정신의 핵심은 아시아 근대가 겪고 체험하는 것을 극복해 내는 과정과 정신적 원형에 있고, 아시아의 식민적 근대를 극복하는 상징적인 요소를 다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 핵심을 이루는 것이 동학정신과 5·18정신이죠. 물론 그 사이에 4·19라든지 이런 역사적인 것들도 있지만요. 그리고 동학정신이나 5·18에 똑같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광주에서 흔히 얘기할 때 대동세상이라고 하는데, 바로‘대동정신’,‘ 크게 함께하는 정신’이 있었습니다.

동학의 핵심인 인내천(人乃天)은, 사람이 하늘이고 하늘이 사람이라고 하는 사상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서구의 이원론적인 인간과 세계, 주체와 세계가 대립하는 세계적 인식이 아닙니다. 자연과 인간을 또는 인간의 문명과 인간 자체를, 법과 제도와 인간 자체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면화해서 동시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민족이다, 언어다, 국가다, 또는 지배계급이다, 피지배계급이다, 피부색깔이다 등등의 차이와 차별을 인정하는 대신 그걸 긍정하고 녹여내서 하나로 소화해가는 것이 바로 대동정신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한국의 근대화, 한국의 절차적인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정신의 내면을 채워내는 아주 빛나는 자산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문화는 가치로 형식을 구현하고, 생활의 형식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가치를 구현하는 장소로서 광주가 가장 적합한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문화를 생각할 때 유물이나 유적같이 오랫동안 전승되어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물론 그것도 중요한 문화적 컬렉션이고 증거들입니다만, 이것들이 중요한 이유는 시각적인 관광자원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미래의 문화를 재창조할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근대 100년 동안 가치는 광주가 그렇게 중요한 역사적, 인류학적, 사회학적, 정치적, 수많은 가치를 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문화적 형식으로 충분히 구체화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5·18은 국가적인 과제로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부상자들이나 사망자들, 또 구속자들에 관한 보상 등 그런 차원으로는 곤란합니다. 보상은 또한 단순한 명예 회복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요? 저는 문화적으로 밖에 해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요소는 광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 5·18과 같이 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이 수없이 있어요. 탈레반, 중국의 천안문, 파룬궁, 동티모르, 태국의 탁바이 대학살이 있었고 또 지금도 미얀마에서는 군부통치에 의한 학살과 폭력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뿐만이 아니고 이란, 이라크, 팔레스타인, 터키의 트루크족, 러시아, 체첸 등 수없이 많은 아시아 역 내에만 해도 지금도 학살과 폭력이 계속 진행되고 있고 정치적 억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니란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광주의 정신성은 아시아에서 되풀이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상징적 가치와 함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을 보편적인 가치로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공유하느냐가 문제일 텐데요. 이것은 일상생활에 소통되는 문화적인 방식으로 소통되어야 합니다. 바꿔 말하면 아시아 최초로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아시아문화교류센터 내에 정치적인 학살과 관습적인 억압과 피해를 통해서 부상당했거나 구속되었거나 고문당했던 사람들의 외상과 충격에 의한 정신적인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치유센터가 생깁니다. 사람이 팔이 하나 잘리고, 손가락이 하나 잘리고, 고문당하고…. 어디 이것만 중요합니까. 그 이후에 그 정신적 충격으로부터 발생하는 삶이 파괴돼 버리는 과정들을 치유해가는 센터가 한군데도 없습니다.아시아에 그렇게 수많은 학살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도 한예가 없고 일본에서도 한 적이 없어요. 우리가 그걸 해서 아시아 전역에 그런 종류의 상처들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 프로그램을 치유하고 또 그 방법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것이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5·18 구속자 동지나 유가족이나 사망자들 이런 사람들의 가족들, 그 사람들이 바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뚜쟁이, 양아치, 철가방, 이발사였지만 그들이 목숨 걸고 참여한 순간이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신분이나 처지를 확실히 뛰어넘었던 매우 고귀한 헌신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끝나고 났을 때 폭도로 몰렸을 뿐 아니라 돈으로 보상하면서 생기는 존재적인 모멸감이 생겼습니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습니다. 자기들이 헌신했던 역사적 순간들만큼 소중한 사회적 참여를 통해 그 보상이 이루어졌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참여한 이 역사를 증언하고 이걸 풀어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사회화 과정의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상이군인처럼, 사망한 사람들처럼 또 이권에나 개입하고 마약이나 사는 사람들처럼 역사적인 소외가 발생한 것이죠. 이런 사회화 과정을 통한 치유라고 하는 문제를 우리가 같이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라 아시아의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해법입니다.

유가족들의 보상 문제를 말씀하셨는데요. 기독교 역사를 보면 과거에 수많은 순교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순교하신 분들을 가톨릭은 선의, 아니면 독자, 선자, 이렇게 해서 추앙을 하고 있습니다. 수백 년 역사 뒤에까지도. 또 시복식, 시성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유족들이라든가 돌아가신 분들한테 금전적인 보상을 받는 것 외에 국가에서 의인 호칭을 준다거나, 애국자 칭호를 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놓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상자들, 사망자 유가족들만이 아니라 그때 그 시절에 함께 했던 사람들도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백 년 동안 역사적인 소외와 억압 속에 있을 때 누구는 부상자이고 누구는 사망자이고 하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집단적인 무의식 속에 있습니다. 그 피해 속에 함께 있는 거죠. 이런 것들을 극복해 가는 과정은 그들의 높은 가치실현 의지와 자긍심과 이런 것들이 살아나게 하는 문화적인 프로젝트를 통해서 그걸 구현하게 하고 드러내게 하고 표현하게 하는 것입니다.그것이 이 프로젝트가 가지고 있는 로컬리티의 측면이고 국가적인 내셔널리티 측면이고 아시아적인 근대성의 글로벌리티의 측면입니다. 이 세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광주는 그냥 광주가 아니고 탁바이일 수도 있고, 동티모르일 수도 있고, 울란바트로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광주 5·18민주화운동 이후에 뭐가 일어났습니까? 천안문 사태, 필리핀 마르코스 축출, 인도네시아 민주화, 대만의 국민당 축출 등 아시아 민주화의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시발점이 광주입니다. 실제로 광주 5·18기념재단과 아시아문화전당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해마다 광주인권대회를 열고 국제인권대회를 치르면 지금 열거한 국가들이 전부 옵니다. 다만 해마다 오고 있는데 국가적인 관점에서 조명을 하지 않은 것이지요. 그냥 광주에서 하고 마는 것처럼 됩니다. 아웅산 수지가 작년에 5·18광주인권상을 수상했습니다만, 5·18기념재단에서 아시아인권상을 주고 있는데 이런 면이 사회정치학 측면에서 광주가 갖고 있는 글로벌리티입니다. 로컬리티면서, 글로벌리티인거죠. 아울러 문화적 측면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라는 문제도 봐야 합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에는 많은 박물관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박물관의 컬렉션들이 유럽 것인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이런 데서 전부 약탈해온 장물들입니다. 즉, 유럽이 직접 생산한 것을 컬렉션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정작 그것을 실천하고 창조해냈던 사람이나 미의식은 많이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침략에 의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시아는 아직 그런 수많은 문화적 자산들이 생활 안에서 구현되고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자원이나 자산으로 동원된 적이 없습니다. 컬렉션으로 동원된 경험이 있을지언정, 문화적 자산이나 자원으로 동원된 바가 없습니다.우리도 그렇습니다. 쪽이라든지, 도자기라든지, 이런 것이 우리만 가지고 있는 세계 최고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시아의 소수민족들이나 아직 근대화의 진행이 덜 된 다른 국가들은 이런 자산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산들을 세계적인 것으로 다시 현재성을 부여하는 것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으로 유도하고 또 기획했던 것입니다. 아까 말한 정치사회적 측면이 역사적인 외면적 요소라면 그런 문화적인 양식들은 그것들을 내면화하고 있는 것입니다.관건은 그것들을 자원으로 동원해 내는 것이고, 방법론은 디지털화입니다. 그래서 전당은 거대한 디지털자원센터이자 기획창조센터이고 또 자료센터이고 연구센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계 최대의 아시아자원센터이면서 디지털컨버전센터고, 이런 자원과 자산을 제3의 콘텐츠로 만들어가는 창조센터입니다. 그래서 이 과정이 가장 필요한 것은 연구, 교육, 창조를 한 군데로 이렇게 믹싱해서 함께 운영할 수 있는 기획자들의 기획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든 저항이나 압제나 폭력에 대한 그런 투쟁의 근저를 보면 인간들의 자유로운 정신이 있고 그 정신가치가 추구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 가치는 갑자기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고 문화적 전통이나 가치의 전통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 티베트가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는 그 근저에는 수천 년을 흘러온 티베트 불교(남아 불교)의 자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의라든지, 그림이라든지, 의식이라든지 하는 티베트 불교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화적 요소가 티베트다운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는 힘인 동시에 티베트 저항의 핵심입니다.남도, 한국의 호남에는 판소리가 대표적입니다. 또 농경문화의 근거지이기 때문에 각종 민요, 들놀이, 이런 것들이 발달해 있지요. 마을마다 농악이 없는 곳은 한군데도 없습니다. 또 당제도 없는 데가 없었습니다. 마을마다 열리는 당제는 대동제로도 불리는데 마을의 주민자치기구입니다. 거기서 회의도 하고,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조상들한테 축원도 하고, 땅이나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고천제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마을의회인 셈이지요. 다가올 한 해 농사에 대해서도 결정하는데 벼파종은 언제쯤 할지 등을 이곳에서 정합니다. 또, 우리 마을에 빚이 얼마니까 몇 섬씩 걷을지 등 모든 마을 대소사를 결정하는 마을 의회가 열리는 장이기도 합니다. 그런 요소들이 남도문화에 풍부하게 녹아 있습니다.요즘 근대정신으로 표현하자면 자연스러운 주민자치의 정신입니다. 이 자치는 외부로부터 억압이나 폭력에 대해서 저항하거나 부당한 권력에 대해서 싸울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문화적으로 풀어질 때는 굉장히 신명이 넘치고 또, 한이 서리게 풉니다. 여기 진도 다시라기라든지 장례 풍속 같은 것이 그런데요, 굉장히 풍자적입니다. 이런 요소들을 이 지역이 갖고 있는데, 이런 요소가 남도에만 있느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인도네시아에도 있고, 말레이시아, 동티모르, 미얀마에 가도 있습니다. 아시아 전역에 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전근대적인 삶의 양식 안에는 그런 질서들이 풍부하게 있습니다. 이쪽만 그런 게 아니지요. 북방 쪽의 뭐 몽골이나, 우즈베크나, 카자흐나, 트루판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한테 판소리가 있다면 몽골에는 허미라는 것이 있습니다. 허미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목으로 동시에 두 가지 소리가 발생하는 창법입니다. 사람이 ‘아’하고 소리를 내는데 하나는 높은 고음으로, 하나는 저음으로 소리가 나옵니다. 어떻게 두 개의 옥타브 소리가 나올 수 있는 건지 다른 곳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거지요.

가성이라도 한 가지만 나오지요. 그런데 두 가지 소리가 같이 나와 버립니다. 그건 음악계에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허미 같은 음악적인 방식의 비밀들을 프랑스에서 아무리 해명하려고 해도 잘 안되죠. 우리 판소리 같은 연희 형태는 프랑스 오페라 역사에도 없고 연극의 역사에도 없어요. 아직 이런 것들이 세계무대에서 올바로 대접받거나 조명 받거나 재창조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잘 알다시피 가부키가 있고, 중국에는 영화 <패왕별희>에 나오는 경극이 있습니다. 그런 자기나라의 독특한 형식이 한국에도 있고 베트남에도 있고 몽골에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이렇게 수없이 많은 아시아적 연희 형태, 음악, 미술, 음식, 의복, 종교 제반에 거친 풍속, 이런 것들이 전부 지향하고 있는 가치가 뭐냐면 자유로움과 성(聖)스러움입니다. 매우 종교적이면서 사람이 생활하는 일상 속에 다 녹아들어 있습니다. 서구적 패러다임 위에 성장한 세계문화가 벽에 부딪쳤을 때 우리가 돌파구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대안은 이런 문화에서밖에 달리 찾을 도리가 없을 겁니다.그것을 디지털로, 그 원형들을 복원하고 다시 재창조하는 작업을 하는 센터를 우리가 국책사업으로 광주에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고 싶다면 그것을 글로 써보아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즉, 지나간 모든 시간들은 기억 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는 모든 방식은 문화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다른 방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근대가 받은 상처를 다시 치유하고, 서구적 글로벌 스탠더드 속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해 가려면 자기들이 아시아 근대를 통해서 겪었던 모든 상처들을 표현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표현해낸 양식들을 다시 현대성에 맞게 재구성해봐야 합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인 동시에 우리가 광주에 아시아문화전당을 짓고 국책 사업으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유럽 사람들도 무조건 동의하는 것이고, 아시아의 많은, 물론 아시아의 중국이나 일본은 싫어하고, 싱가포르도 싫어합니다만 (마치 패권적으로 여기에 그 중심을 건설하는 것처럼 오해를 하니까). 아시아정신은 철저하게 타자성에 있습니다. 내가 너고, 네가 나라고 하는… 이런 것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시아 각 역내에는 수많은 정치군사적 충돌과 긴장이 있기 때문에, 문화적 요소가 잘 안 보입니다. 그리고 아시아의 군사적인 역내의 충돌과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길은 이런 문화적인 연성권력(soft power)을 통해서, 연성외교의 틀을 통해서 연대감을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래서 이 사업이 국책사업인 겁니다.

오지호 선생은 한국 인상주의의 1세대 화가지만 단순히 기법으로 성공한 분이 아닙니다. 인상주의 화풍이지만 거기에 투여되는 미학적인 힘들은 전통적인 한국화기법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화가의 에너지와 정신적 기세들이 그대로 그림에 투사되는 '격물치지'의 정신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것이 오지호 선생을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이유입니다. 게다가《알파벳문명의 종언》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한글전용 때 국한문혼용을 하라는 내용입니다. 그런 중요한 운동과 역사적인 과정에도 참여를 많이 했습니다. 좌파운동에도 참여를 해서 희생도 치렀습니다. 역사적 선택에 있어서도 지식인으로서 올바른 선택을 했던 분이죠.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뭐냐면, 남도의 남종화니 뭐니 하는 문인화 계통이나 의재, 남농, 이렇게 하는 대가들 뭐 이런 분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시아의 한 요소로서 한국의 남방문화, 이 측면을 보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는 그런 뛰어난 개인의 천재들, 개인 창작자들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전체가 생산하고 있는 미학적인 표현양식들이 더 중요합니다. 개인들은 자기가 창작적 주체이면서, 또 창작의 결과물을 책임지는 사람이긴 하지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영감과 그런 것들이 그 공동체로부터 수혈을 받는다고 봐야 합니다. 최근에는 이 작가적 개성 같은 것들이 아주 주관적이 되기 때문에 공동체 자체가 잘 동의를 못합니다. 그렇지만 전승되고, 전통적으로 이어져오는 양식 안에는 공동체적인 보편성과 집단적 재능 같은 것들이 투여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이 공예나 판소리 같은 경우죠. 집단창작이면서 개인창작입니다. 농악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이죠. 지금은 사물 놀이하는 김덕수 등을 브랜드화하고 있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집단적인 양식입니다.이러한 문화적 본질에 입각해서 보면 공동체적인 문화양식들이 남도에 풍부하게 있습니다. 그것이 조형예술에도 있고, 건축, 조형, 문학, 음악, 이런 모든 요소에 다 들어 있습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나 우즈베키스탄 등 여러 나라에 다 있습니다. 프랑스가 독일이나 영어권의 서구적 글로벌스탠더드에 밀려서 한번도 제대로 평가받은 적이 없습니다. 프랑스의 이런 것들도 다 국지적인 것이고 지방적인 것입니다. 칸초네가 무엇입니까?그 벨칸토 창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 판소리창법은 무엇이고, 몽골은 허미는 무엇입니까. 그런 측면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이제 극복해가야 할 때가 됐다는 것입니다.

국장님께서 쉬운 말로 요약하고 개괄해주시는 것은 좋습니다만, 단순히 국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화의 어려움은 큰 틀을 짜서 개괄해 버릴 수 없는 세부, 그 스펙트럼이 있습니다. 이걸 잘 살려주셔야 합니다.우리 사업에 대한 홍보의 어려움도 여기에 있습니다. 잘못하면 홍보가 거꾸로 되어 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아시아적 보편성이라고 하는 측면을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 국제적인 센터를 짓는 거지, 국립센터를 짓는 게 아닙니다. 더군다나 지방 센터를 짓는 것은 더욱 아니에요. 그런데에 몇 조원씩 투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수조 원을 투입해서 국책사업으로 가는 것은 아시아를 대표할 수 있는 아시아문화의 집결지이면서 또 발신지의 역할을 기능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로컬리티만 강조되거나, 국책사업으로서 내셔널리티만 강조되면 아시아글로벌스탠더드를 구축하고 만들려는 본래 목표가 훼손되어 버립니다.그래서 반드시 아시아의 보편적 관점을 확보하지 못한 채 카피가 나가거나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되면 곤란합니다. 여수엑스포나, 평창올림픽처럼 행사 한번 하고 지나갈 순 없습니다. 20년, 30년, 40년, 계속 가야 하는 사업입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이벤트처럼, 어떠한 정권 차원의 이벤트처럼, 행사성 사업처럼 받아들이거나 그런 관점으로 접근해버리면 무조건 실패합니다.

앞서 언급한 오지호 선생님이나 허백련 선생님 같은 분들은 익히 알고 계시므로 다른 부분도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호남은 문인들의 전통이 역시 매우 강했습니다. 유신 이후부터인데, 이쪽 작가들이 한국 문단의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지하라든지, 이성부, 양성우 등 기라성 같은 주력들이 여기에서 출현했고, 최근에는 임철우까지 많은 작가와 문인들을 배출했습니다.평론하는 김현도 목포 출신이죠. 그래서 광주를 예향이라고 합니다. 예향, 의향, 미향 등의 요소들이 아시아적 보편성과 밀도 있게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했던 판소리, 농악, 들놀이, 진도민요 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판소리 등 풍부한 놀이양식, 연희양식과 공연양식이 살아있었습니다. 대중적인 전통문화에서부터, 높은 작가적 전문창작자들의 예술적 성취까지 이 지역처럼 스펙트럼이 풍부한 지역이 없었습니다. 과거의 서울보다 훨씬 이 지역이 문화적 축적이나 역량 훨씬 컸습니다. 1970년대까지.

도자기문화는 강진이나, 장흥이나 몇 군데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굉장히 국수주의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청자, 백자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중국으로 나가거나, 중동으로 나가면 도자기 문화가 정말 엄청납니다.청자를 우리만 만든 줄로 알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고려청자 생산지로서의 강진이 굉장히 중요하고 지금도 전통을 되살리고 있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꼭 그것만 우리 것이 최고인 것처럼 강조하면 보편타당하지 않습니다. 한편으로 이쪽의 들노래라든지 노동요는 문화와 경제를 일치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행위가 삶에 투영됐고, 그 삶에 녹아 있는 것들이 다시 문화로 순환됐던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아시아문화전당이 도시와 순환해야 한다고 하는 개념은 사실 남도정신하고 상통하는 것입니다. 남도가 바로 일과 놀이, 생산과 문화예술 등 문화와 경제를 일치시킨 전통이 있는 곳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다산이나, 윤선도나, 해남의 백광운 선생이나, 정철이나, 기대승 등 수없이 많죠. 16, 17세기 문인들이 많습니다.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끝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시아의 근대성, 그리고 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디지털 정신은 있는 것과 없는 것, 0과 1사이의 문제를 다루는 게 본질입니다. 아시아정신이 바로 이 디지털정신의 기본 발상과 굉장히 흡사하고, 그래서 인도가 IT강국으로 떠오르게 됐다고 봅니다. 차원 개념과 시간개념, 공간개념이 독특하기 때문입니다. 아시아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이기보다는 통합적이고 영성적입니다. 그래서 0과 1사이가 구분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증식되고 통합되는 이런 특징을 가집니다. 그래서 디지털정신과 아시아의 통합된 정신하고 노마드하고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이지요.

쟈크 아탈리라고 하는 프랑스의 작가가 있습니다. 프랑스 한 대통령의 정치 참모였고, 미래학자이기도 합니다. 그 아탈리가 자신의 책에서 최초로 도시의 유목민이라는 맥락에서 노마드 개념을 썼지요. 물론 그 전에 노마드 개념을 쓴 것은 가타리였지만, 그가 보다 구체화한 것이지요.요즘 우리가 쓰는 말은 디지털노마드입니다. 그리고 문자에서 디지털 문자로 가는 것을 저는 ‘신구비문화’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국가나 민족 같은 것들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번에 노트북을 가지고 고비에 가서 사진 찍고 그냥 카드 끼워서 거기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송장비 가지고가면 다 전송이 되죠. 파라볼라를 가지고가서 위성 송수신 받으면 바로 이리 보낼 수도 있고 인터넷도 거기에서 점검 할 수도 있습니다. 몽골 가서, 베트남 가서 틀어보세요. YTN이 실시간으로 나옵니다. 아리랑은 물론이고 KBS 월드도 다 나옵니다. 공간개념으로 보면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몽골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다 보고 있어요. 채널만 돌리면 다 나옵니다. 그래서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즉, 인류의 문명을 크게 정착문명과 유목문명으로 나누는데요. 정착된 문명은 농업과 도시를 만드는 데고, 비정착 문명은 유목하는 것입니다. 유목은 여러 가지입니다. 말이나 양을 키우고 낙타를 키우는 고비쪽 유목민들이 있고, 북쪽으로 가면 엘크를 키우는 사슴유목민들이 있고, 남방으로 가면 해양유목민이 있습니다. 바다에 수상가옥 짓고, 떠돌아다니며 사는 해양노마드가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에 정착해서 성을 짓고, 도시를 구축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정착민들이 있습니다. 창고를 지어서 농사짓고 잉여물을 비축하고 유통해야 되는 이런 식의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세계는 이렇게 정착문명과 유목민들 사이에 계속 각축이 있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디지털노마드 안에서는 그런 식의 정착태와 이동태 사이에 갈등이나 쟁투가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혼성이 되는 거고 컨버전 되어버린 거죠. 그런 의미에서 놓고 본다면 국립문화아시아전당은 일종의 컨버터 센터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