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자국의 전통문화에 앞서 미국 할리우드 영화와 배우들을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전통춤과 음악을 배우기 것보다 팝과 힙합을 선호하며 현지 음식을 먹기보다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는 것이 더 품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도네시아의 일부 예술인들은 전통문화 재평가하고 발전시키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가믈란축제(Gamelan Festival)’도 이러한 움직임의 하나다. 인도네시아의 전통 음악인 가믈란을 주제로 한 이 축제는 올해로 12년째 지속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문화적 전통의 중심지인 중부자바 죡자카르타(Yogyakarta: 이하 죡자)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지방정부의 후원 아래 민간단체의 주도로 행해진다. 이 축제의 특징 중의 하나는 축제 참여자가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가믈란 음악을 보전, 발전시키고, 그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세계인들이 매년 이 축제에 자발적으로 모여, 그동안 갈고 닦아온 실력을 보여준다. 올해 7월에 열린 가믈란 축제에는 캐나다, 프랑스, 일본, 말레이시아, 그리고 호주에서 온 외국인들이 공연을 펼쳤다. 이런 의미에서 가믈란 축제는 외국인의 참여를 통해 전통문화의 중요성과 가치가 재확인되는 장이며, 지역문화의 세계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가믈란은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합주 음악으로써 자바와 발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가믈란은 자바어로 ‘두드리다’라는 뜻의 ‘gamel’에서 유래하였다. 그래서 연주의 중심이 되는 악기는 징과 실로폰인데, 대다수 악기가 동(銅)이나 나무를 그 소재로 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형식으로 공연되는 가믈란은 그 편재에 따라 대편성, 중편성 그리고 소편성으로 나뉜다. 대편성은 총 23명으로 구성되며, 왕가의 잔치나 의례에서 연주할 때 구성되며, 약식 궁중 의례에서는 중편성이 극장이나 민간 행사에서는 소편성이 쓰인다. 가믈란의 가장 뛰어난 사운드는 전통자바 왕국이 현존하고 있는 죡자와 솔로(Solo)의 왕궁에서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가믈란은 음악이라는 수준을 넘어서 삶에 대한 자바인의 철학이 담긴 것으로, gong(징)은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안전한’ 삶을, 그리고 Rebab(활로 켜는 현악기)은 인간의 호흡을 상징한다고 한다. 가믈란에는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자바인의 이해가 깔려 있다고 하는데, 신으로부터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면서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한다.
가믈란 축제의 시작은 1993년 제5회 ‘죡자카르타 예술축제(The Yogyakar
ta Art Festival)’였다. 여기서 삽또 라하르죠(Sapto Raharjo)씨는 컴퓨터 음악과 가믈란을 결합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1994년 페스티벌에서는 4개의 서로 다른 작곡 방식을 채용한 가믈란 연주가 소개되었다. 이후 죡자 지방정부 산하 문화 위원회, 문화예술 관련 공무원, 그리고 예술계 인사들이 모여 가믈란을 재평가했고, 이를 페스티벌의 독자적 프로그램으로 추진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1995년부터 정부의 승인아래 가믈란축제는 죡자카르타 예술 페스티벌 내 독립 프로그램으로 그 역사를 시작했다. 2000년도부터 시작하여 가믈란 축제는 독립적 행사로 개최되고 있다.

가믈란축제의 기획자들은 가믈란을 연구하고 사랑하는 전 세계의 애호가들이 가믈란 정신을 교감하고 상호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가믈란축제는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단순한 음악회가 아니라 전통을 보존, 발전시키고, 그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하며, 이를 세계인과 함께 공유하는 의미의 행사로 자리를 잡았으며, 가믈란 연주 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참여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믈란 교육을 통해 젊은이에게 전통문화의 가치를 제고시키고, 동시에 축제에 참여하는 외국인과의 교류를 통해 가믈란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지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믈란 축제는 외국인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수행 했다. 첫째, 공연의 초점을 전통문화의 고수가 아닌 전통의 재창조 및 새로운 실험에 위치시켰다. 가믈란과 현대 음악과의 접목은 이들이 행했던 주요한 시도인데, 바이올린, 전자기타, 피아노 등과의 협연을 통한 가믈란 연주가 시도되었다. 또한, 가믈란 악기와 유사한 소리를 낼 수 있는 도구(예를 들어 주방도구)가 사용되기도 했고, 컴퓨터 그래픽, 오토바이와 함께 가믈란 연주가 행해지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는 전통의 창조적 발전 가능성의 제시라는 목적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더욱 쉽게 가믈란 음악과 접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게 함으로써, 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고 지속시키는 효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둘째, 인터넷을 통한 축제참가 시스템이 구축해, 외국인들이 상시로 참가를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가믈란 관련 아마추어 조직과 동호인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홍보 역시 지속하였다. 또한, 개인 참여를 장려하고자 개인 자격으로 신청한 외국인을 내국인 가믈란 그룹에 포함시킴으로써, 이들이 더욱 쉽게 축제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였다.
셋째, 기획자들은 축제에 참여한 외국인 가믈란 그룹이 인도네시아 가믈란 그룹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게하려고 두 그룹 간의 자매결연을 시도했다. 그 결과, Wesleyan University(USA)의 학생 가믈란 공연팀이 죡자의 ISI 가믈란 팀과, New York Indonesian Consulate Gamelan(USA)팀이 솔로의 STSI 가믈란 팀과, 그리고 American Gamelan Institution(AGI)팀이 메단의 Ben M. Pasaribu 팀과 결연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러한 자매 결연은 내 외국인이 가믈란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채널을 제공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축제 참여를 지속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가믈란 축제에는 크게 4개의 주요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축제 중간 참가자와 관객이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은 비형식적 활동도 즉석에서 이루어진다. 축제의 주요 행사는 크게 콘서트와 세미나, 전시 및 라디오 실황으로 구성된다. 콘서트는 최소 2일에서 4일 동안 계속되며, Gamelan Gaul (가믈란과의 교류)과 본행사로 나뉘어 진행된다. 세미나는 가믈란 공연에 대한 학문적, 예술적 교류의 장으로써 예를 들어 과거에는 '가믈란과 현대 음악과의 결합' 그리고 '외국인 그룹에 의한 가믈란 작곡'과 같은 가믈란의 전통성과 변화 문제 등을 포함했으며, 전시의 경우에는 외국에서 열렸던 가믈란 행사에 사용된 악기, 혹은 개인이 오랫동안 보관한 소장품들을 전시한다. 또한 이 행사의 참가자들이 그동안 모아 가믈란 관련 사진, 책, 글, 테이프, 그리고 아이템들을 전시하기도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행해지는 다른 축제와 가믈란축제가 돋보이는 것은 외국인의 관심과 자발적 참여이다. 이들의 참가는 가믈란 축제, 나아가 가믈란 음악을 발전, 확산시키기 위한 원동력의 하나로서 작용해왔다. 이를테면 축제에 참여한 외국 그룹의 이후 활동을 보면. 가믈란 축제를 위해 죡자를 방문한 후, 이들은 본국으로 돌아가 가믈란 음악의 소개와 교육, 그리고 발전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행하였다. 미국의 가믈란 동호회 조직(American Gamelan Institution)은 미국인들의 축제 참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독자적인 홈페이지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뉴질랜드 음대 구성원으로 조직되었던 가믈란 그룹은 축제 참가 후, 음대 정규 교과과목의 하나로서 가믈란 연주를 포함시켰다. 몇몇 유럽 및 미국 그룹은 귀국 후 자신들의 연주 곡을 담은 CD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외국인의 이러한 활동이 가믈란에 대한 인도네시아 내부의 관심을 확대시키는데 일조했다는 점이다. 즉, 자신들의 전통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외국인의 모습은 인도네시아 일반인들로 하여금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했고, 이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죡자의 가믈란 축제는 전통문화의 계승이 그것을 세계화시키려는 노력을 통해서도 진행될 수 있다는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정예선(인도네시아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