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7일, 구 전남도청과 경찰청 건물 뒤로 아시아문화전당의 부지가 철거되기 시작했다. 오밀조밀 도심을 채우던 건물과 골목은 그렇게 사라졌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의 꿈과 민주화의 상흔이 지나쳤을 그곳이 만들어진 시간보다 더 빨리 콘크리트 더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한편 구 전남도청과 경찰청 건물은 5·18의 상징하는 ‘민주평화교류원’으로 리모델링되어, 광주가 품은 ‘민주·인권·평화’의 정신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천천히 그 일대를 둘러보며 생각해본다. 시간과 시대를 거치며 많은 삶들이 지나치고 머물던 그곳을 누군가는 앨범 속 사진으로 추억할 것이고, 또 어느 누군가는 디지털 카메라나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둘 것이고, 또 어느 누군가는 블로그에 적어둘지 모른다. 그리고 이 광경은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예술작품 속 이미지나 테마로, 건축가들의 프리젠테이션으로, 다시 광주시와 문화관광부의 서류철로 남아‘기록과 증거’로 새로운 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이미 한번 사라졌지만 다시 한번 사라지게 될 아시아문화전당의 부지. 사라질 모습과 다가올 모습이 교차하는 그 자리에서 담은 2007년 8월 13일과 14일의 이야기, 어떻게 남을까.

수많은 문을 열고 이 복도를 지나,
그토록 많은 문을 통과해낸 우리가 만나게 될 그곳은 어떤 도시일까.

전남도는 2005년 10월 14일 오후 6시 본관 앞에서 전남도기를 내렸다. 일장기, 태극기, 전남도기를 바꿔 달며 지켜온 세월은 이제, ‘등록문화제 16호’가 되었다.

광장은 없다. 그런데 광장은 있다. 일제강점기와 개발독재 시절의 격랑은 광장에서 소용돌이쳤고, 전남도청 앞은 늘 그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이미 지나온 문 중 하나를 되돌아봤고, 그 문은 잠시 열렸다 닫혔다. 하나의 문을 통과해 다음 문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새로운 것을 위해 그리고 그것이 새롭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소멸’을 선택한다.
우리는 그 소멸을 ‘진보’와 ‘개발’이라 불러왔다.
“이제 다 철거해서 찍을 것도 없는데 뭣하려고…. 문을 열어도 볼 게 없어요.”
“원래 여기에 어떤 건물이 있었나요? 지금 봐도 참 넓으니 건물도 무척 많았겠어요.”
“뭐 문예회관도 있고, 농협중앙회 건물도 있었고. 아 대의동우체국도 있었지. 맞아.”
“대동우체국이요?”
“아니 대.의.동.우.체.국. 대의동이라고. 우체국 몰라?
비가 와서 오늘은 공사 안 하니까 저기 앞에 있는 공사장으로 가봐.
거기 가서 물어보고 사진도 찍어.
아무것도 없는데 자꾸 묻고 찍고 그러네.”
‘없어져서 아무것도 없는데’. 새로움의 정의다.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새로움’의 또 다른 이름은 ‘소멸’이다.

그러나 소멸이 가져온 새로움은 오래된 것을 부활시킨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쉼없는 길항관계는 시간의 퇴적층을 관통하며,
기억의 내전으로 그리고 역사의 재발굴로 변환되고 반추된다.

“인터뷰라니 쑥스럽네요. 따로 설명드릴 것도 별로 없는 걸요. 철거를 시작할 때 오셨으면 사진 찍기 더 좋았을 거구요. 철거는 2005년 10월에 이주기간이 끝나면서 시작됐어요. 철거공사를 하니까 가슴 아픈 사연 같은 것 많이 보고 듣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번 공사를 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사실 <화려한 휴가> 촬영이에요. 여기가 완전히 철거되기 전에 영화촬영을 잠시 했거든요. 아버지 역으로 나온 안성기 씨도 보고 TV에서 보던 배우들도 간간히 보이고 그랬어요.”
우리는 기억이 사라지는 이곳에서 그의 기억을 묻고 있었다.
“다들 철거공사가 마구잡이로 건물을 부수는 것으로 생각들을 하시는데,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아요. 먼저 상하수도나 전기 같은 것을 차단한 다음에 석면 같은 환경유해물질을 분리해서 따로 배출을 해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철거작업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나오는 페기물도 분리해서 별도의 처리를 거치거든요. 환경을 지키는 공사라 그만큼 신경 쓸 것도 많은 편이죠. 이제 거진 끝나가니 다른 공사장으로 떠나니까 전당 공사는 볼 수 없겠지만, 나중에 완공되면 꼭 다시 보러 오고 싶어요.”
그는 지금을 기억할 것이고, 다시 새로운 기억을 하게 될 것이다.

“저야 그냥 보통사람이지만 그래도 전남에 사는 사람으로써 역사에 남을 공사 중 일부를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인터뷰라는 말에 바싹 긴장한 최원준 씨의 모범생 같은 대답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전당이 완공되면 어떨 것 같으세요?”
“이 공사장은 저희 집과 회사 중간에 있어요. 여기 공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면서 지나던 곳이죠. 원래의 모습도 기억하죠. 사라진 것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전당이 들어선다고 하니까 좋아요. 전당이 완공되면 그때는 그 전당을 보면서 출퇴근을 하겠죠. 그리고 나중에 완공된 건물을 앞으로 태어날 제 아이들이랑 와보고 싶어요. 아빠가 여기서 공사했다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그 생각을 하니까 더 좋네요.”
그는 기억이 소멸이 아니라 생성이라고 말한다.

“다음은 우리가 역사의 천사를 상상하는 방법이다. 천사는 과거를 되돌아본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과거는 비극적인 사건들로 줄줄이 연결되어 있다. 천사는 그런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에 시선을 멈춘다. 그리고 그 뒤엉킨 비극의 파편들을 자신의 발 밑으로 그러 모은다. 천사는 그 비극의 자리에 머물려 한다. 죽은 자들을 깨우고, 파괴된 것들을 감싸 안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때 파라다이스에서 폭풍이 불어온다. 엄청난 속도의 이 폭풍은 천사의 날개를 때리며 죽은 자들과 파괴된 것들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한다. 어떻게 저항할 수 없는 이 폭풍은 죽은 자들과 파괴된 것들이 천사의 발 밑에서 하늘을 찌를 듯 쌓여가는 동안 천사의 얼굴을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게 한다. 이 폭풍을 우리는 진보라고 부른다.”
- 발터 벤야민 <역사의 천사> 中

날개를 펼친 역사의 천사가 바람이 불어오던 쪽으로 몸을 돌리고, 묻는다.
행복하세요?